영화 소개/중동-걸프 전쟁

빈 라덴 암살작전 : 제로 다크 써티 (Zero Dark Thirty, 2012) 7.7

슐츠105 2013. 1. 26. 17:14

미국, 157분

감독 : 캐서린 비글로우 (Kathryn Bigelow)
출연 : 제이슨 클라크(Jason Clarke), 레다 카텝(Reda Kateb), 제시카 차스테인(Jessica Chastain)

 

 

 

 

 

 

 

 

 

 

 

 

 

 

 

 

 

 

오사마 빈 라덴 (Osama bin Laden) 암살

 

 

 

 

FBI는 오사마 빈라덴이 193~198cm의 장신이며 약 75kg의 마른 체형이라고 기술하였다. 그를 인터뷰한 미국의 기자 로렌스 라이트는 그가 호리호리한 체격이지만 특별히 키가 크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의 작가인 로렌스 라이트에 따르면 그는 올리브색 눈에 왼손잡이이며, 걸을 때에는 대부분 지팡이를 사용하였다. 그는 주로 평범한 흰색 터번을 착용하였는데, 그 전에는 보통 사우디 전통 남성 모자를 이용하였다고 한다. 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며 온화한 성품으로 묘사되었다.

 

아랍어나 아랍 이름을 라틴 문자로 옮기는 국제 표준은 없지만 빈라덴의 이름은 대개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이라는 형태로 표기된다. 미국 FBI나 중앙정보국(CIA) 및 기타 미국 정부 기관들은 "우사마 빈 라덴"(Usama bin Laden) 또는 "우사마 빈 라딘"(Usama bin Ladin)으로 표기하는데, 둘다 약자로 "UBL"이라 표현되기도 한다. o나 e를 사용하는 것은 빈라덴이 많은 시간을 보낸 아프가니스탄의 공용어로 파슈토어식의 표현이다.

아랍어식으로 그의 이름을 풀이하면 "오사마, 무함마드의 아들, 아와드의 아들, 라덴의 아들"이 된다. 빈라덴의 아들 오마르 빈라덴에 따르면 그의 가문에 전해지는 성은 "알카타니"(아랍어: ‎القحطاني, āl-Qaḥṭānī)인것으로 보이는데, 빈라덴의 아버지 무함마드 빈라덴은 공식적으로 이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사마 빈라덴의 추종자들은 여러 이름으로 그를 호칭하는데, "에미르"(الالمجاهد, al-Amīr),"셰이크"(الشيخ, aš-Šayḫ), "셰이크 알 무자히드"(شيخ المجاهد, al-Muǧāhid Šayḫ), "사자"(حج‎, Ḥaǧǧ), "독재자"등이 사용된다.

 

9.11 테러
거듭된 부인 끝에 오사마 빈라덴은 2004년에야 미국에서의 2001년 9월 11일의 테러 행위가 자신들의 소행임을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인정하였다. 이 사태는 4대 민간 항공기를 공중납치하여 건물에 충돌시키는 방법으로 세계 무역 센터 건물을 붕괴시키고 버지니아 주의 펜타곤(미 국방성 건물) 건물을 일부 파괴하였다. 이 사건으로 2974명의 무고한 인명과 19명의 공중납치범들이 사망하였다. 사태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였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탈레반 조직을 공격하고 알카에다 조직원들에 대한 체포에 돌입하였으며, 여러 국가들이 향후의 테러 공격에 대히바히 위해 대(對)테러 준비를 강화하였다. CIA에 신설된 특별 부서는 빈라덴을 추적하여 생포하거나 제거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FBI는 알카에다와 빈라덴이 9.11 테러에 개입되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음을 밝히고, 그들의 소행임을 명백히 하였다. 영국 정부 또한 이와 유사한 결론을 내렸지만 확고한 증거는 찾지 못하였다고 밝혔다.

빈라덴은 사태에 개입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였으며, 2001년 9월 16일 카타르의 알자지라 위성방송을 통하여 다시 한번 개입설을 부정하였다.

 
2001년 12월 빈라덴미군은 2001년 11월 잘랄라바드에서 빈라덴이 할레드 알하르비와 공격에 대한 계획을 논의하는 장면을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를 찾아냈으며, 이 비디오는 2001년 12월 13일 다양한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되었다. 그러나 아랍 전문가 압델 엘후세이니 박사는 비디오 테이프에 나온 대화를 번역한 것으로는 정보가 부족하여 빈라덴의 9.11 개입 의혹을 밝힐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던 중 2004년 10월, 빈라덴은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사태 개입을 부정하던 태도를 버리고 자신이 직접 19명에게 공중납치를 지시하였다고 밝혔다. 미국 총선을 4일 앞드고 알자지라에 보도된 이 18분 분량의 테이프에서 빈라덴은 여객기 공중납치에 대한 미국 조지 워커 부시 대통령의 부주의함을 비난하였다. 이 테이프에서 빈라덴은 1982년 레바논 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건물들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2006년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보도된 다른 두 개의 비디오 테이프에서 오사마 빈라덴은 자신이 계획의 책임자였으며, 람지 빈 알시브, 함자 알감디,와일 알셰흐리가 실제적인 공격을 준비하였다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 중 알감디와 알셰흐리는 9.11 테러의 공중납치범의 일원이었다.

 

죽음
2011년 4월 29일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인근 지역을 수색하여 빈라덴을 체포하기 위한 작전에 서명하였다. 이 작전 이름은 '넵튠 스피어 작전(Operation Neptune Spear)'였으며, 빈라덴을 가리키는 코드명은 '제로니모'(Geronimo, 아메리카 원주민 아파치족 추장 이름에서 유래)였다. 당초 빈라덴의 위치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지대, 파키스탄 연방 관할 부족지역 사이로 알려졌지만 그는 사실 이로부터 160km 떨어진 곳에 있는 아보타바드의 시가 25만 달러 상당 3층 저택34°10′9.63″N 73°14′33.33″E / 34.1693417°N 73.2425917°E / 34.1693417; 73.2425917에 있었다. 그의 저택은 파키스탄 사관학교 남서쪽 1.3km위치였다. 구글어스를 보면 해당 저택은 2001년 위성 사진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2005년 위성 사진에는 존재한다.

 

 

 

빈 라덴의 저택

 

사후 철거중인 그의 자택


빈라덴 사살 당시 저택 구조도2011년 5월 1일(파키스탄 표준시간 기준으로 5월 2일) 워싱턴 D.C에서 버락 오바마는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되었으며, 그의 유해는 미군에 의하여 수습되었다고 발표하였다. 향년 54세. 미국정부는 미국 해군 특수전 개발 그룹 소속 네이비실 6팀 24명이 합동 특수 작전 지휘부(Joint Special Operations Command)와 CIA 공조 하에 2대의 헬리콥터를 이용해 빈라덴의 저택을 급습하였다고 하였다. 이 작전으로 빈라덴과 남성 3명, 여성 1명이 사살되었으며 미군의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헬리콥터 1대가 기기 고장으로 불시착하였으며, 네이비실 팀에 의해 현장에서 폭파되었다. 오바마는 언론 발표에서 미군이 민간인의 피해를 야기하지 않기 위해 만전을 기하였다고 하였다. 미국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 공격은 파키스탄 측에 통보 없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작전 당시 빈라덴은 머리와 가슴에 치명상을 입었다고 알려져 있다. 빈라덴의 죽음은 현장 사진과 함께 '제로니모 작전 중 사살'(Geronimo E-KIA)이라는 코드로 보도되었다. 작전 소요 시간은 정보부의 현장 수색까지 포함하여 40분이 걸렸다. 빈라덴의 유해는 수습되어 생명 안면 인식 시험이 이루어졌으며, 부차적으로 유전자 검사까지 시행되었다. 그의 시체는 땅에 매장할 경우 추종세력들이 그 곳을 성지로 정하고 테러활동을 원활하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라비아 해에 수장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1년 5월 6일 알카에다는 빈라덴의 죽음을 인정하면서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대한 보복을 천명하였다.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저택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는 빈라덴

 

빈라덴과 파키스탄의 연관성
일부는 파키스탄군과 보안당국이 빈라덴을 보호하였다고 의혹을 제기, 비난하였다. 예를들어, 파키스탄의 유명 칼럼니스트 모샤라프 자이디는 "빈라덴이 파키스탄 당국 모르게 그곳에서 살았을 리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대통령 아시프 알리 자르다니는 파키스탄 군의 빈라덴 보호 가능성을 전면 부인하면서 이를 근거없는 억측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문제는 미국과 파키스탄 간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을 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빈라덴은 사살되기 전까지 적어도 그 장소에서 3년간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빈라덴의 은신처는 빈라덴을 위하여 지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고가의 안전가옥이었으며,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도 100km 거리 내에 위치하고 있었다.

파키스탄 외무부는 미국의 오사마 빈라덴 체포 작전이 있기 전까지 어떠한 사전 정보도 입수하지 못하였다고 발표하였다.
파키스탄 특사 후사인 하카니는 이슬라마바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빈라덴의 안전가옥을 파키스탄 정보부가 왜 찾아내지 못하였는지, 그리고 파키스탄 내부의 지원 체계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그 지원 체계가 파키스탄 정부 내에 있었는 지의 등의 여부를 전면적으로 조사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기타
빈라덴은 키가 193cm에 달하는 장신이다.
빈라덴은 세계 10대 현상수배범 중 1순위이며 그의 현상금은 미국 정부와 시민단체의 현상금을 합하여 2,700만 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현상금이 걸린 현상수배범이 되었다. 미국 의회가 기존의 2,500만 달러에서 두 배인 5,000만 달러로 현상금을 올렸지만 FBI 홈페이지에는 액수가 오르지 않아 2,500만 달러가 파키스탄 정부에 지급될 예정이다.
국내외 언론 및 통신에서 ‘오바마 사망’이라는 내용을 보도했으나, 이는 오사마를 오바마로 잘못 적은 실수로 판명이 났다. 예시를 들면 미국 폭스 TV 등에서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소식을 알리면서 ‘속보 : 오바마 빈 라덴 사망(REPORT : OBAMA BIN LADEN DEAD)’으로 표기를 했다. 이와 더불어 ‘우사마 빈 라덴 사망(USAMA BIN LADEN DEAD)’이라고도 속보를 냈다. 일부 네티즌들이 우사마도 오타가 아니냐고 얘기했지만, ‘우사마’는 ‘오사마’의 다른 표기로 판명이 났다.

 

------------------------------------------------------------------------------------------------------------------------------

 

[앵커]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두목인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된지도 벌써 1년이 다 돼갑니다. 미국의 패네타 국방장관은 지난 1년을 돌아보며 당시의 급박했던 순간을 회상했습니다.

이정민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해 5월 1일 새벽, 미군은 파키스탄 은신처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습니다.

[인터뷰] 오바마 대통령
"미국은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리더인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습니다. 정의가 실현됐습니다."

당시 CIA 국장으로 작전 책임자였던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이 숨막혔던 순간들을 회고했습니다. 빈 라덴의 은신처로 향하던 헬기 중 1대가 은신처 벽 안쪽에 추락했습니다.

이 보고에 미국 지휘부는 깜짝 놀랐지만 "미리 예비용 헬기를 주변에 대기시켜놨다"는 현장 지휘관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요원들이 은신처 안으로 투입된 후 20분간은 현지 영상이 완전히 끊겼습니다. 백악관 상황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오바마 대통령과 참모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어 극도로 긴장했습니다.

마침내 빈 라덴을 침실에서 찾아내 사살했고 몇 분이 지나 사살 보고를 받고서야 작전이 제대로 됐음을 실감했습니다. 미군은 추락한 헬기는 폭파시키고, 빈 라덴의 시신을 싣고 출발했습니다.

파키스탄은 최근 오사마 빈 라덴의 부인들과 자녀 등 유족을 사우디로 추방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오바마 진영은 그를 제거한 것을 대표적인 대외정책 성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