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개/2차대전 기타

이너 서클 (Ближний круг-The Inner Circle, 1991) 6.8

슐츠105 2013. 1. 27. 13:57
이탈리아, 소련, 미국 137분

감독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출연 밥 호스킨스, 톰 헐스, 로리타 다비도비치, 알렉산드르 즈브루에브, 페오더 칼리아핀 주니어, 베스 메이어, 마리야 바라노바, 이리나 쿠프첸코, 블라디미르 쿨레쇼브, 브세볼로드 라리오노브, 알렉산드르 필리펜코, 예브도키야 게르마노바, 류보브 마추시나         

 

1939년부터 스탈린의 개인 촬영기사였던 이반 산친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줄거리
1939년 모스크바. 영사 기사인 이반(Ivan: 톰 헐스 분)이 결혼한 날 밤 KGB는 그의 이웃을 끌고 간다. 한 시간 후 그들은 다시 찾아와 아무 잘못 없는 그도 끌고 간다. 그러나 그는 사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웅인 스탈린(알렉산드르 즈브루브 분)을 위해 영사기를 돌리는 영광을 부여받아 스탈린의 ‘내부 조직’ 즉 ‘이너 서클(The Inner Circle)’의 한 사람이 된다.
  이반의 부인인 아나스타시아(Anastasia: 로리타 다비도비치 분)는 끌려간 이웃의 부인이 돌아버리자 그의 딸인 카티아(비라 에크로이모바 분)를 입양하려 한다. 그러나 반동분자로 찍힌 자의 딸을 입양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고 이반이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결국 이반에 대한 스탈린의 신임이 두터워짐과 동시에 아나스타시아는 카티아(10세: 마리아 바라노바 분)를 몰래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이반에게 있어 스탈린은 죽음과도 바꿀 수 있는 그런 신적인 존재였다.
  그후 2차대전 당시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스탈린과 내부조직 인사들은 피신을 한다. 기차 안에서 아나스타시아는 하녀로 임시 고용되는데 KGB인 베리아(Veria: 밥 홉킨스 분)의 환심을 사버려 그와 동행하게 하고 이반은 크렘린으로 되돌아가라는 지시 하에 혼자 귀향한다. 일년 후 아나스타시아는 베리아의 아이를 갖게 되나 이반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그녀를 극진히 보살펴준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과 카티아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목을 메어 자살하고 마는데.

 

 

 

 

 

 

 

 

 

 

 

 

 

 

 

베리아의 엽색 행각

----> http://www.necrosant.net/zbxe/25925

 

 

<간추린 정보>

 

 

Lavrenty Pavlovich Beria

Beria는 Beriya라고도 씀.

1899. 3. 29(구력 3. 17) 러시아 메르헤울~1953. 12. 23 모스크바.

스탈린이 반대자들을 숙청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 소련의 비밀경찰국장.

1917년에 공산당에 들어간 베리아는 아제르바이잔과 그루지야에서 혁명활동에 참여하다가 첩보활동과 대적(對敵) 정보활동을 시작해(1921) 그루지야의 체카(비밀경찰) 우두머리로 임명되었다. 그는 1932년 카프카스 산맥 남쪽 지역의 공화국들을 담당하는 공산당 서기장이 되었고, 스탈린의 대숙청(1936~38) 때는 이 공화국들에 대한 정치적 숙청을 직접 관장했다. 베리아는 1938년 내무인민위원회(NKVD:소련 비밀 경찰) 위원장인 니콜라이 예조프의 부관이 되어 모스크바로 영전했다. 예조프는 스탈린의 명령으로 체포되어 총살당했고, 그후 베리아가 비밀경찰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는 어느 전임자보다도 오랫동안(1938~53)이 자리를 지켰다. 베리아는 공식적으로는 예조프가 1930년대 중엽에 자행한 숙청의 '과도함'을 경감시키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그는 경찰 관료조직 자체의 숙청작업을 지휘했고 나라 전역에 세워진 수많은 강제 노동수용소를 관리했다. 1941년 2월 그는 소련 부총리가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국방위원회 위원으로서 소련의 국내 치안체제를 관장했을 뿐 아니라 수용소에 가둔 사람들에게 자신의 임의대로 강제노동을 시킴으로써 소련의 원자재 생산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1945년 소련의 육군 원수가 되었으며, 또한 1934년부터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이 되었고, 1946년부터는 집행부의 정책결정위원회인 정치국에 소속되었다. 정치국이 1952년에 최고회의 간부회로 개편되었을 때도 베리아는 그 자리를 지켰다. 1953년 3월에 스탈린이 죽은 직후, 베리아는 비밀 경찰 기능과 정규경찰 기능을 통합한 내무국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4명의 부총리 중 한 명으로선임되었다. 뒤이어 벌어진 권력투쟁에서, 베리아는 비밀경찰의 우두머리라는 지위를 이용해 스탈린의 뒤를 잇는 독재자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1953년 7월 무렵 이미 말렌코프와 몰로토프 및 흐루시초프가 이끄는 반(反)베리아 동맹이 확고한 우세를 장악하고 있었다. 베리아는 체포되어 공직과 당직을 빼앗기고 '제국주의의 첩자'로서 '범죄적인 반당활동과 반국가활동'을 했다는 공개비판을 받았다. 그는 1953년 12월에 열린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직후 처형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