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츠의 자막공방/203고지 (1980)

망각된 러일전쟁과 '제물포 영웅들'

슐츠105 2016. 8. 30. 17:45

인천 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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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2월 8~9일 제물포 앞바다에서 발생한 러일전쟁의 첫 해전을 서구에서는 제물포해전(The Battle of Chemulpo), 일본에서는 인천충해전(仁川沖海戰)이라고 부른다.

흔히 러일전쟁 발발은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가 이끄는 일본 함대가 뤼순(旅順)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함대를 기습공격하면서 개전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그러나 소비에트 시대에 출간된 러시아의 러일전쟁사 저작에는 뤼순에서 전투가 벌어진 1904년 2월9일 밤보다 하루 앞서 2월8일 오후 4시 제물포에서 첫 교전이 이루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로스뚜노프 외 전사연구소 편, '러일전쟁사', 김종헌 옮김, 건국대학교 출판부, 2004, 127면)

2006년에 필자가 우연한 기회에 외국 인터넷서점에서 발굴해 출판했던 '러일전쟁, 제물포의 영웅들'이란 책이 있다.

1904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간된 가스통 르루(Gaston Leorux)의 '제물포의 영웅들'(원제 LES HEROS DE CHEMULPO)를 완역한 책이다.

소설 '오페라의 유령' 작가로 알려진 프랑스의 문학가 가스통 르루는 당시 프랑스 '르 마탱(Le Matin)'지의 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제물포해전 패배 이후 귀국 길에 오른 러시아 수병들을 선상에서 만나 5일간 함께 여행하면서 인터뷰해 제물포해전의 전 과정을 생생하게 복원해 놓았다.

이 책을 통해 생생하게 복원된 제물포해전은 러일전쟁의 역사적 축도를 잘 보여준다.

제물포해전에서 일본함대가 보인 주도면밀한 기습공격과 이에 대한 여러 열강 함선들의 반응과 태도는 그대로 러일전쟁의 전황과 경과, 그리고 국제적 세력 재편의 실상까지 압축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단 한 명의 한국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한제국은 전쟁의 승자에게 돌아갈 정복대상일 뿐인 탓이다. (가르통 르루, '러일전쟁, 제물포의 영웅들', 이주영 역, 인천: 도서출판 작가들, 2005)

러일전쟁 기간 일본 국내에서는 축제와도 같은 전쟁 붐이 일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백인종의 대제국인 러시아를 상대로 승리한 것은 일본인들에게 감격스런 신화의 원천이었다.

그 과정에서 도고 헤이하치로를 비롯한 무수한 전쟁 영웅을 낳았으며, 화보잡지와 기록사진, 기록화, 그림엽서로 제작됐다.

러일전쟁이 끝나기도 전인 1905년 2월9일을 맞아 인천의 일본인들은 제물포해전에서 승리한 2월9일을 '인천의 날'로 제정해 해마다 성대한 기념행사를 열었으며, 1932년 제물포해전 주력 전함이었던 치요다호가 퇴역하자 그 마스트를 만국공원 정상에 세워 기념했다.

그런데 러일전쟁에 열광한 것은 비단 일본국민만 아니었다.

러일전쟁은 이전 시기 일본 내 소수 재야 강경론자들의 담론이었던 아시아주의가 국제정치적 담론으로서 결정적인 힘을 얻은 계기였으니, 중국을 비롯해 서구국가의 침략을 받아 식민·반식민 상태에 떨어진 모든 아시아 국가가 전쟁 발발과 함께 일본 승리에 환호했던 것이다.

같은 동양인이면서도 두 제국주의 국가의 전쟁에 국토를 싸움터로 내준 조선인의 처지는 비참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강압으로 '공수동맹'을 체결한 대한제국은 러시아의 적국으로 이 전쟁에 참전했다.

2월9일 제물포해전 당일에 대한제국 최초 군함인 양무호가 참전했다는 사실은 비참하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양무호는 우리나라 근대식 군함의 효시로, 고종황제가 해군 창설을 위해 구입해 1903년 4월15일 제물포항에 취항했던 한국의 첫 근대식 군함이었다.

고종황제는 이 군함의 이름을 "나라의 힘을 키운다"는 뜻에서 '양무(揚武)'라 지었다고 한다.

그런 양무함이 러일전쟁 개전과 동시에 일본 해군 요구에 강제로 징발을 당해 첩보함으로 사용됐던 것이다.

일본 동맹국이었던 대한제국은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탓에 승전국의 지위를 누려야 했지만 곧바로 체결된 을사늑약으로 일본의 식민지로 되고 말았다.

비록 전쟁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러시아는 '국가주의'의 영웅을 얻었다.

제물포해전에서 일본 함대 기습공격을 받았던 러시아 순양함 바랴그호와 코레예츠호 승무원들은 패색이 짙자 전함을 일본에 넘겨주지 않기 위해 자폭했고, 프랑스 파스칼호의 구조로 살아남은 러시아 수병들은 이후 러시아로 귀환해 국가주의의 영웅으로 추앙됐다.

'강한 러시아'를 외치는 푸틴 대통령의 등장 이후 이들 '제물포의 영웅'을 국가주의 영웅으로 호출하려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러시아는 2005년 인천 연안부두에 전사한 러시아 수병들의 추모비를 세우고, 인천시립박물관의 바랴그호 깃발을 대여해갔다.

지난 14일 저녁 연안부두의 추모비를 푸틴 대통령이 방문하고 돌아갔다.

러시아 측에서는 이곳에 러시아정교회 사원 건립을 위해 인천시에 부지제공을 요청했다는 보도다.

우리에겐 철저히 망각된 러일전쟁의 역사 위로 러시아 역사가 덧씌워지고 있는 현실에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 없음은 비단 필자만의 소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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