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개/분쟁&독립 전쟁

국경 1918 (Raja-The Border 1918, 2007) 6.7

슐츠105 2013. 1. 21. 21:38

드라마, 로맨스, 전쟁 핀란드, 러시아 114분
감독 라우리 토르호넨

출연 마르틴 바흐네, 민나 하아프킬라, 토미 코르펠라

 

 

 

 

 

 

 

 

 

 

 

 

 

 

<핀란드의 독립과 내전- 위키백과>

 

러시아령 핀란드 대공국
 
나폴레옹 전쟁 중에 핀란드 영토를 둘러싼 열강의 외교전이 전개된 끝에 1808년 핀란드는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의 군대에 의해 점령당했다. 그로부터 1917년까지 핀란드는 제정 러시아의 자치 대공국이 되었다. 1812년에는 카리알라가 핀란드에 되돌려졌다.
 
이 기간 핀란드 농민들은 러시아의 농노들과 달리 자유로웠는데, 이는 구스타브 3세의 1772년 헌법이 유지되었기 때문이었다. 19세기에는 산업화가 시작되었다.
 
민족주의
 
19세기에는 핀란드 민족주의의 부흥이 있었다. 중세에는 독일어, 라틴어, 스웨덴어가, 16세기와 17세기 이후에는 스웨덴어가 핀란드의 행정과 교육에서 주요 언어로 쓰였지만 핀란드어가 쓰이는 비중은 민족주의와 함께 커졌다. 스웨덴어를 쓰던 상류층들은 핀란드어와 핀란드 문화를 장려하기 시작했다.
 
엘리아스 뢴로트는 1835년-1849년에 민족 서사시 칼레발라를 저술하여 민족주의에 불을 붙였다. 1892년 핀란드어는 드디어 스웨덴어와 비교할 만한 공식 지위를 얻게 되었고 곧 핀란드어가 정부와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1906년에는 일원 국회가 출범하여 보통 선거제로 뽑혔는데, 유럽에서 최초로 여성들에게도 선거권이 주어졌다.
 

독립과 내전 
제1차 세계대전 말기인 1917년에 핀란드는 독일제국의 공국인 헤센카셀(Hessen-Kassel)가를 핀란드의 왕가로 받아들여 독일제국으로부터 책봉을 받는 형식상의 제후국이 되었다. 1918년에는 러시아 혁명의 여파 속에 핀란드는 좌우 진영으로 갈라져 내전을 치렀다. 단기간에 공산주의·사회주의 연합 반란 세력의 패배로 끝이 났지만 핀란드 내전은 핀란드 현대사 중 가장 아픈 기억 중의 하나이다.
 
이때 핀란드 정부는 반란 세력 진압에 독일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해 11월 11일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독일의 위성국가로 전락하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그 후 핀란드는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핀란드 내전 -위키 백과>

핀란드는 러시아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7년 독립을 선언하였다. 러시아는 당시 혁명의 와중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독립 핀란드는 실업, 물가 폭등 등으로 혼란을 겪었다. 그 중에서 대지주 계급들은 스스로 백위군을 결성하고 소작농, 노동자들은 적위군을 결성했다.
 
1917년 11월 총파업을 계기로 내전이 시작되었다. 백위군은 독일제국, 스웨덴의 도움을 받았고 적위군은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
 

경과
 개전(開戰)
 
1918년 1월 18일 백위군은 칼 구스타프 만네르헤임을 사령관을 임명했다. 그리고, 적위군은 아리아르톤으로 임명했다. 1월 19일에 최초로 전쟁이 발발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1월 28일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백위군은 핀란드 헬싱키에서 탈출해서 바사시를 임시 수도로 삼았다.

 

적위군의 상황
 
적위군은 1월 28일에 수도 헬싱키를 점령하고 한때 핀란드 남부지역을 장악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문제점은 장교도 없었고 원래 군인들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싸움이 고난했다. 그래서 레닌의 러시아 부대를 요청하려고 했지만 소비에트 연방은 거절했다.


 백위군의 상황
 
백위군은 2월 14일에 독일제국에 대해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독일은 1개 사단을 파견, 그리고 해군은 2척을 의뢰해서 적위군을 포격했다. 실질적으로는 3월 15일에 발포하기 시작해 반격해온 결과 백위군이 크게 이기고 있었다. 여기서 핀란드 내전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는 핀란드의 공업도시였던 판 테레 전투이다.
 
결과
 
백위군은 4월 13일에 헬싱키를 점령했다. 그 뒤로도 승리해서 5월 5일날 마지막 거점을 점령함으로써 끝났다. 백위군은 독일제국 왕가의 사람을 왕으로 세우는 왕정 수립을 고려했지만, 1차 세계대전에서의 독일군의 패색으로 그 계획을 접고, 핀란드는 공화국이 된다. 내전 기간 중 백위군의 백색테러로 1월~5월 사이에만 5만 명 이상의 적위군과 혁명 지지 노동자들이 백위군에 의해 학살당했다. 내전 기간 동안 핀란드에서 백색테러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의 숫자는, 1918년 전 기간 동안 러시아 전역에서 벌어진 적색테러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보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