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개/고대 ~중세 전쟁

글래디에이터 확장판 (Gladiator Extended Remastered, 2000)

슐츠105 2013. 1. 21. 21:54

액션, 드라마 | 영국, 미국 | 154 분 |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러셀 크로우 (막시무스 역), 호아킨 피닉스 (코모두스 역), 코니 닐슨 (루실라 역), 올리버 리드 (프록시모 역)

 

수상
73회 아카데미시상식(2001) 수상 작품상, 남우주연상(러셀 크로우), 의상상, 음향상, 음향편집상

 

줄거리
죽을 날이 머지않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막시무스를 총애하여 아들이 아닌 그에게 권력을 넘겨주기로 한다.그러나 황제의 아들 코모두스는 이에 질투와 분노를 느껴 황제를 살해한다. 왕좌를 이어받은 코모두스는 막시무스와 그의 가족을 죽이라고 명령한다.가족을 모두 잃고 겨우 살아남게 된 막시무스는 노예로 전락하고, 투기장의 검투사로 매일 훈련을 받는다. 그에게 남은 건 오로지, 새로 즉위한 황제 코모두스에 대한 복수 뿐. 검투사로서 매 경기마다 승리로 이끌면서 살아남자 그의 명성과 인기는 날로 높아 간다. 로마로 돌아온 그는 아내와 아들을 죽인 코모두스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 전 사랑했던 황제의 누이 루실라를 다시 만나게 된다. 어느새 민중의 영웅이 된 막시무스. 코모두스는 그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고 분노하지만 민중이 두려워 그를 죽이지 못한다. 드디어 막시무스는 예전의 부하들과 은밀히 만나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존경하던 황제를 살해한 난폭한 황제 코모두스에 대한 복수를 결의한다. 아직도 막시무스를 사랑하고 있는 루실라는 동생 코모두스를 배신하고 막시무스의 반란을 도우려하는데…

 

 

 

 

 

 

 

 

 

 

 

 

 

 

 

 

 

 

검투사(劍鬪士, 라틴어: gladiatōrēs)

 

고대 로마 때 경기장에서 사람이나 야생 동물, 범죄자 등과 싸우는 것을 업으로 삼았던 직업적 전사를 말하며, 검투 경기는 이들 검투사가 벌인 스포츠 경기였다.


검투사의 어원

로마 시대 검투 경기는 수도 로마뿐만 아니라, 로마 공화정과 제정에 걸쳐 제국 전역에서 실시되었다. 이 말의 어원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에스파냐를 점령한 후 채택한 에스파냐 원주민의 검에서 유래했다. 검투사 중에서 유명한 사람은 기원전 73년에 발생한 노예들이 해방을 위해 로마 공화정를 상대로 싸운 계급투쟁인 스파르타쿠스 전쟁을 주도했던 검투사 노예 스파르타쿠스였다.

 

 

                      프랑스의 화가 장 레옹 제롬이 1872년에 그린 로마시대 검투사의 모습

 

검투사의 세계

격투기가 직업인 사람들검투사에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지원하는 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검투사는 노예로서 멸시당했고 힘든 환경에서 훈련되었으며 죽음에 있어서 조차 사회에서 분리되었다. 그들은 관객들에게 로마의 무술 윤리를 제공했고, 대중의 관심을 받게 하였다.

 

학교

1세기경에는 이미 검투기는 학교에 가서 배우는 것이었으며 여러 학교와 검투 스타일이 존재했다고 한다. 싸우는 스타일은 보통 전투에 응용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오늘날의 무술 대련에 가까운 것으로서 실제 검투 경기 중에는 서로 상대방의 스타일을 알고 싸울 수 있도록 같은 학교의 검투사를 대련시켰다고 한다.

 

규칙

검투사가 반드시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은 아니었으며,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시기에는 이미 죽기까지 싸우는 검투 경기는 아주 드물었다. 특별한 경우 있는 죽음에 이르는 경기는 따로 “sine missione”라고 부르고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심판이 경기를 계속 시켰으나, 일반적으로는 한쪽 검투사가 어느 정도 부상을 입을 경우 관중들이 “habet, hoc habet”(그는 당할 만큼 당했다)라고 말하면 끝내거나 심판의 판단으로 시합을 중단시켰다.

 

보상

그러나 관중들이 패배한 검투사의 죽음을 요구할 경우, 검투사의 소유주의 재량에 따라 죽음을 용인하기도 했다. 이 경우 죽은 검투사의 가족에게 소유주가 일정액의 보상을 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보상비가 오늘날의 비용으로 약 10억 원 정도에 해당하여 자칫 밑지는 장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실 검투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고 하며, 죽음은 대부분의 경우 사고사였다고 한다.

 

검투경기의 금지

검투 경기는 4세기 말경까지 계속되었다. 서기 325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검투 경기를 금지시키는 법령을 통과시켰으나, 실제로는 별다른 효력이 없었다. 검투경기를 몰락시킨 것은 시대적 변화였다. 검투기에 대한 관중의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살인을 금기시하는 기독교가 계속 세력을 늘리는 관계로 검투 시합을 해서 버는 수입도 계속 감소하여, 마침내 399년이 되면, 호노리우스가 제정한 검투기 금지령이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했다. 마지막으로 알려진 로마 시내의 검투 경기는 404년에 있었고, 440년에는 로마 제국의 기록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