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전쟁, 어드벤처 |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이탈리아 | 175 분 |
감독 올리버 스톤
출연 콜린 파렐 (알렉산더 역), 안젤리나 졸리 (올림피아스 역), 발 킬머 (필립왕 역), 안소니 홉킨스 (프톨레미 역)
줄거리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는 대군을 이끌고 막강한 페르시가 군에 대항해 싸웠던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콜린 파렐)의 이야기를 그린 서사 대작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단 8년 만에 페르시아 영토를 모두 점령하고, 33세 죽음의 순간까지 거침없는 정복과 승리를 이루어 왔으며,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영화 <알렉산더>는 젊은 지도자의 거침없고 가열찬 패기와 야망을 화려한 영상으로 표현한 동시에 부왕(발 킬머)으로부터 진정으로 인정받고 싶었으며, 권력욕에 휩싸인 어머니(안젤리나 졸리)와의 역사적 갈등을 통해 대왕의 인간적인 면까지 담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비범한 여정은 그가 페르시아의 통치 아래있던 서아시아를 정복하기 위해 마케도니아를 떠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알렉산더 대왕의 군사들은 강력한 페르시아 군과 대적해 도저히 믿기 힘든 승리를 이끌어 낸다. 유럽의 다른 제국들이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원정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그 시대에, 알렉산더 대왕은 최초로 미지의 세계였던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제국을 확장 시켰으며, 그의 정복은 인도로 까지 이어졌다. 알렉산더 대왕은 자신의 군대를 사막과 산, 정글까지 사정없이 밀어붙였고, 전쟁사에서 전무후무한 무패의 전적을 세우며 그에게 대항하는 모든 제국을 정복했다.
<알렉산더>는 야망과 꿈으로 불타 올랐던 알렉산더 대왕의 젊은 시절에서부터 광대한 제국의 통치자로써의 활약상과 의문의 외로운 죽음을 맞이한 순간까지 연대기적으로 그리고 있는 동시에, '운명은 용기있는 자를 선택한다'는 역사적 평가를 입증하듯 젊은 나이에 전 세계의 통일을 이룩한 신화가 된 정복자의 삶을 스펙터클하게 그리고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그리스어: Αλέξανδρος 'ο Μέγας 또는 Μέγας Aλέξανδρος, 기원전 356년 7월 말~기원전 323년 6월 10일)
필리포스 2세의 왕위를 계승한 후 인류 역사상 거대했던 제국인 알렉산드로스 제국을 세운 마케도니아 왕국의(그리스어: 'ο Μακεδών 호 마케돈) 왕으로서 그의 업적을 기려 마케도니아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 받들며, 때로는 계승 서열에 따라 알렉산드로스 3세(그리스어: Alexandros tritos 알렉산드로스 트리토스,Alexander III)라 일컫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영어의 영향으로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또한 아랍식 이름으로 이스칸다르(아랍어: الاسكندر الاكبر Iskandar[*])라고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로서, 세계 4대 성인 소크라테스의 증손제자이다.
개요
기원전 356년에 펠라에서 태어난 알렉산드로스는 부왕 필리포스 2세가 암살되자 그 뒤를 이어 기원전 336년에 왕위에 올랐으며, 13년 뒤인 32살의 나이로 죽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치세와 제국은 단명하였으나, 그의 정복에 따른 문화적 영향은 수백 년간 이어졌다. 알렉산드로스는 고대사의 인물 중에서도 매우 유명한 인물로, 뛰어난 전술 능력, 정복 활동, 그리스 문화의 동방 확산으로도 두드러진다.
이미 그는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일개 전술단위를 지휘하는 장군이었으며, 실제로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그의 기병대는 테베 군의 전열을 와해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속설이 있다. 그의 다듬어진 전술적 감각은 필리포스 사후에 페르시아의 대군을 격파하는 데 빛을 발하게 된다. 더욱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으로 그 자신부터 헬레니즘 사상을 전파하겠다는 사명감에 불타오른 그는 직접 페르시아의 공주와 결혼하며 문화 결합과 그리스 문명의 전파의 선구자가 되고자 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로마 제국 초기까지 그리스 학문은 지식인들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익혀야 하는 요소가 될 정도였다. 필리포스는 군사와 외교 수단을 이용하여 그리스 본토의 도시 국가들을 지배하였다. 필리포스가 죽을 때 알렉산드로스는 강력한 왕국과 숙련된 군대를 물려받았다. 그는 그리스의 장군 지위도 승계하였으며, 자신의 권위를 굳히고, 아버지가 못다 이룬 정복 계획을 개시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가 지배하는 소아시아를 침공하여 10년간 일련의 전쟁을 치렀다. 알렉산드로스는 전투에서 연거푸 페르시아인들을 물리쳤으며, 시리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박트리아로 진군하여 페르시아 다리우스 3세 대왕을 몰아내고 페르시아 제국을 완전히 정복하였다. "세상의 끝과 거대한 외해"까지 가고 싶었던 자신의 열망을 좇아 인도를 침공하였으나 결국은 전쟁에 지친 자신의 군대가 항명에 가까운 반발을 하면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아라비아 침공을 시작으로 일련의 전쟁 계획을 실현할 기회가 있었으며, 이후 기원전 323년에 바빌론에서 죽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자 후계자들의 전쟁으로 제국은 분열하였으며, 마케도니아 귀족 들이 다스리는 수많은 나라들이 생겨났다. 알렉산드로스의 정복 활동이 위대하긴 하였으나, 그가 남긴 영속적인 유산은 자신의 통치가 아니라 자신의 정복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문화 전파였다. 그리스의 식민자와 문화가 알렉산드로스를 필두로 동방에 유입되어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가 발생하였으며, 어떤 점에서 헬레니즘은 15세기 중반까지 비잔티움 제국의 전통에서 계속 보존되었다. 알렉산드로스 자신은 아킬레우스처럼 전설적인 영웅이 되었으며, 그리스의 신화와 역사와 더불어 비(非)그리스 문화에서도 두드러진다. 그는 오늘날까지도 장군들의 모범이며, 전 세계 군사 학교에서는 지금도 그의 업적을 가르친다.
초기의 생애
필리포스 2세와 왕비 에피루스의 올림피아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12세에 사나운 명마인 부케팔러스를 그림자를 보고 무서워하지 못하게 하여 단숨에 길들였고, 점차 자라면서 필리포스 2세는 알렉산드로스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 13세 때부터 그리스의 대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교사로 삼아 가르치게 했다. 알렉산드로스는 뛰어난 무예에다가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탁월한 학문으로 더욱 발전해 갔으며, 그리스 문화가 몸에 배어 있었다. 그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오디세이〉를 감명깊게 읽었다. 동방 정벌 중에도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가 교정한 <일리아드>를 항상 베개 밑에 간직하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나라를 비울 때에는 섭정으로서 나라를 잠시 다스렸으며, 18세 때는 카이로네아 전투에서 그리스 연합군과 싸워 승리하였다.
정복의 시기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그가 죽었다는 소문이 나돌자 그리스 전체가 소란해져 반란의 기미가 엿보였다. 그는 급히 테베를 쳐서 그리스 전토를 장악한 후, 부왕이 남긴 최강의 육군과 뛰어난 지휘관을 이끌고 페르시아 원정 준비를 하였다.
페르시아의 정복
페르시아 정복을 그린 모자이크에 묘사된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수스 전투와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3세의 군대를 격파하여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집트의 태양신인 아몬의 아들을 자칭하여 자신이 태양의 아들이며 살아있는 신임을 주장했다.
두번째의 싸움은 시리아의 이수스에서 벌어졌는데, 페르시아의 정예 부대를 맞아 격파하였다.
인도 공략
그는 순간적인 충동으로 충분한 준비와 조사없이 북인도 정복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겼다. 북인도를 정복하기 시작한 알렉산드로스는 사병들의 큰 반발에 부딪혔다. 연일 탈영이 이어졌고 반란이 일어났다. 습한 기후와 정복에서 오는 피곤과 스트레스 그리고 모기가 매개체인 북인도의 전염병이 사병들을 매우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결국 알렉산드로스도 그곳의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죽었다.
죽음
오랜 원정과 정복으로 그는 서서히 정신적 공황상태와 정서불안에 시달렸다. 날이 갈수록 그는 성격이 괴팍해졌고 친구를 처형할 정도로 쉽게 부하들을 처형하기까지 했다. 그는 바빌론의 관개시설 보수관련 일을 벌이며 잦은 연회를 열었으며 BC 323년 바빌론에 돌아와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던 중, 33세의 젊은 나이로 그 지역의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그 해 6월 10일 사망했다.
제국의 통치
알렉산드로스 제국(마케도니아 제국)의 영토
알렉산드로스는 동서 융합책을 꾀했다. 우선 다수의 그리스 사람을 소아시아(현재의 터키) 지역으로 이주시켰다. 그리고 그리스 사람과 피정복 지역의 주민들을 결혼시켰고 페르시아인 관리들을 등용했다. 그 자신도 페르시아의 군주이자 적이었던 다리우스 3세의 딸과 결혼했으며, 페르시아 여성과 자신의 그리스 군인들간의 사실혼을 정식 결혼으로 인정했다. 알렉산드로스의 동서 융합 정책은 동방과 서방문화를 융합시켜 불교 미술에도 영향을 끼쳤고, 이로 인해 간다라 미술이라는 새로운 미술 양식이 만들어졌다.
그는 정복지의 여러 곳에 알렉산드리아란 이름을 붙인 도시를 건설하였는데, 이는 헬레니즘 문화 형성에 큰 역할을 하였다. 도시들 중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가 가장 유명하다. 그는 대제국의 왕이면서도 호사를 멀리하고 절도의 덕을 간직한 인물이었다.
제국의 분열
그의 사후 제국은 내전상태에 들어갔고 결국 제국은 셀레우코스 왕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마케도니아 왕국, 리시마코스 왕조로 분열되었는데 이 중 리시마코스 왕조는 셀레우코스 왕조에 곧 정복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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