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개/2차대전 서부전선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Paris Brule-t-il, Is Paris Burning, 1966) 6.7

슐츠105 2013. 11. 10. 21:19

드라마, 전쟁 | 프랑스, 미국 | 173 분 | 

감독 르네 클레망

출연 브루노 크레메 (코로넬 롤 탕기 역), 알랭 드롱 (자크 샤반-델마스 역), 샤를 보와이에 (모노드 역), 조지 차키리스 (탱크안 GI 역) 

 

줄거리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을 저지하는 데에 실패한 나치로서, 이제 파리의 함락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에 히틀러는 파리를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명령을 받은 파리 점령군 사령관은 고민한다. 그 자신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그는 군인으로서 명령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예술의 도시 파리를 보호함으로써 역사의 죄인이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인가를 두고 진퇴양난에 빠진다. 연합군의 입성을 앞두고 치열한 활동을 벌이던 레지스탕스들도 이 소식을 듣고는 파리를 지키기위한 숨막히는 사투를 시작한다. 사령관이 파리의 소각 명령을 차마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에 연합군 선봉이 파리에 입성하고, 점령군 사령부는 레지스탕스들의 공격을 받는다. 사령관은 히틀러의 전화를 미처 받지못하고 항복한다. 이때 놓여진 수화기에서 히틀러의 절규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출처 중소기업뉴스 - [위대한결단]디트리히 폰 콜티츠

파리는 불타지 않았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이 소리는 1944년 8월 25일, 파리 점령군 사령관 디트리히 폰 콜티츠(Dietrich von Choltitz·1894∼1966)중장에게 히틀러가 수화기에서 내지른 절규였다.
콜티츠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44년 8월 9일. 파리에 부임했다. 그는 콩코드광장에서 가까운 무리스 호텔에 사령부를 설치했다. 그의 침실 창가에서는 공원의 푸른 숲이 내려다 보였으나 그는 착잡하기만 했다. 이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한 연합군이 파리를 향해 진격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파리 시내에서는 레지스탕스들이 일제히 항거를 시작해서 사태는 점점 폭동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8월 21일, 연합군이 파리를 향해 빠른 속도로 진격해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파리 시민들은 400개 이상의 바리게이트를 구축하고 독일군을 포위하면서 시가전을 벌여나갔다. 신문사, 은행, 정부청사, 엘리제궁이 시민들 손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파리 시민들은 자신들의 수도 파리에 닥칠 위험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패배의 그림자가 짙어져 가자 히틀러는 파리를 초토화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독일군은 이미 나폴레옹이 잠들어 있는 앵발리드 기념관에 2톤, 노트르담 대성당에 3톤의 폭약을 설치하는 등 곳곳의 유명한 유적에 폭파 장치를 설치해 놓고 있었다. 8월 23일 새벽, 드디어 후퇴 명령이 떨어졌고 콜티츠에게 세느강의 다리들을 파괴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히틀러는 콜티츠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파리를 철저하게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파리를 철저히 파괴하라. 모든 기념물과 주요 건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폭파하라. 도시에 전염병이 창궐하도록 수돗물도 모두 끊어 버려라.”
콜티츠는 그런 총통에게서 어떤 광기 같은 것을 느끼고 전율했다. 이제 에펠탑·루브르 박물관·노트르담 대성당·루이 16세 궁전·개선문 등 세계적인 유물들이 가득한 파리의 운명이 콜티츠의 손에 달렸다. 그는 군인으로서 명령에 복종할 것인가, 예술의 도시 파리를 보호해서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 것인가를 두고 깊은 고뇌에 빠진다. 히틀러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 독일에 있는 처자식의 목숨도 위태로워질 것이다. 그는 지휘 본부가 있는 호텔 사령부에서 밤이 깊도록 고뇌에 잠겨서 있었다. 발코니에 나가서 파리 시가를 내려다보던 그의 눈에 빨간 옷을 입은 소녀가 자전거를 타고 콩코드광장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 보였다.
‘이 도시를 파괴하고 저 소녀를 죽게 만드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고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콜티츠는 히틀러의 명령을 따르지 않기로 결심했다. 소환되어 총살을 당할지언정 파리의 수많은 유적을 잿더미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때 히틀러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콜티츠는 태연하게 그렇다고 허위보고를 했다. 8월 25일, 콜티츠는 1만7000명의 휘하 장병과 함께 연합군에 항복했다.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 “후세에 ‘파리를 파괴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1년이 흐른 1966년 여름, 콜티츠가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눈을 감았을 때 그의 무덤에는 파리를 구해 준 그의 공로를 기리며 꽃을 바치려는 파리 시민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다른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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