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개/2차대전 해전

라코니아호의 침몰 (The sinking of the Laconia, 2010) 6.9

슐츠105 2013. 12. 18. 12:01

드라마, 역사, 영국, 독일

출연 앤드류 버칸(토마스 모티머 역), 켄 듀큰(베르너 하르텐슈타인 역), 프랑카 포텐테(힐다 스미스 역)

 

줄거리

1942년 독일 U보트에 의해 침몰된 라코니아호의 6명의 생존자의 눈을 통해 증언하는 실화를 바탕으로한 영화

 

 

 

 

 

 

 

 

 

 

 

 

 

 

 

 

 

 

 

라코니아호 사건에 대한 추천 자료

---> http://nestofpnix.egloos.com/viewer/3869910

 

 

 

라코니아호 사건 관련 되니츠 회고록 발췌

---> http://www.navyfield.co.kr/board/view.asp?Num=58391&Sort=A02&SearchPart=&SearchText=&PageSize=20&Page=311&Order=3&Ctg1=&Ctg2=&Ctg3=&Latest=0

 

 

베르너 하르텐슈타인 소령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wuvamecag&logNo=80090265493)

 

# MAN OF HONOR : WERNER HARTENSTEIN 소령

 

1942년 9월 12일 22 : 00 서 아프리카 해안

어둠속에서 조용히 항해하고 있는 라코니아호를 잠망경을 통해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사나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베르너 하르텐슈타인 (Werner Hartenstein) 소령. U-BOAT 에이스이자 독일군 최고의 영예인 기사십자장의 수훈자였다.
"멋진 배구나....... 호위함도 없고 크기를 보아서는 대형 수송선 같은데........."
그러나 하르텐슈타인 함장의 만족은 곧 공포로 변했다. 침몰한 선박의 선임 승무원을 나포하여 정보를 얻기위해서 함을 부상시킨 그는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침몰현장에서 살기위해 몸부림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침몰한 배에 타고있던 생존자들의 절규는 지옥을 연상케 했다.
그가 격침시킨 배는 전쟁전 컨라드 화이트 스타사의 여객선 라코니아호였고 하르텐슈타인은 알지 못했지만 그 배에는 정규승무원들만 탑승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80명의 여자와 어린아이들, 286명의 영국육군병사와 160명의 폴란드 군, 1800명이나 되는 이탈리아 전쟁포로들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격침시켰던 선박의 승무원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을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 하르텐슈타인 함장에 관한 기억을 떠올릴때면 오직 존경과 호감만을 가질수 밖에 없다.....그가 내 목숨을 구해주었던 것이다. ." Dr. TONY LARGE

 

"하르텐슈타인 함장은 인간애와 명예의 화신이었다...... 그가 그만의 온순한 말씨로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선장이자 뱃사람으로서 나는 확신할수있다. 베르너 하르텐슈타인은 나의 좋은 친구였다고." CAPTAIN DAVID CLEDLYN JONES

 

3. mission of mercy
잠시 망설이던 하르텐슈타인 함장은 곧 결단을 내렸다. 부하들에게 생존자들의 구조를 명령한 것이었다.
곧 U-156의 갑판 아래, 위는 사람들로 빼곡하게 채워졌고 200명이 탄 구명정도 U-156에 의해 예인되었다. 함장은 곧 HAMBURG에 위치한 잠수함대 사령부에 상황을 보고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잠수함작전을 총괄하던 잠수함부대사령관 되니츠제독도 긴급히 2척의 U-보트를 구조 현장으로 급파했다.
동시에 하르텐슈타인은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는 위험을 무릅쓰고 평문으로 인근해역에 있는 모든 함선에 그의 위치를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도움을 주는 선박은 연합국의 선박이라 할지라도 공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했다.
U-156은 현장에서 이틀 반을 보내며 구조활동을 계속했다. 9월 15일 정오 U-506과 U-507 그리고 이탈리아 잠수함 "CAPPELLINI"호가 도착하여 구조활동을 도왔다. 수많은 사람들을 함내와 갑판위에 태우고 구명정을 예인한채로 4척의 잠수함은 아프리카 해안으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갑판에 적십자 깃발을 메단채 항해를 계속하던 잠수함들은 ASCENSION섬에서 발진한 미국 B-24 폭격기에게 발견되고 만다. 하르텐슈타인은 조종사에게 무선연락을 하여 구조에 도움을 줄 것을 요청하였다. 조종사 JAMES D. HARDEN 중위는 현장을 떠나서 기지에 상황을 보고했다.
그날 상황보고를 받은 상급자 ROBERT C. RICHARDSON Ⅲ 대위는 다음과 같은 선택에 직면하게 되었다.
비록 생존자들을 구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4척의 적 잠수함을 살려보내서 그들이 다시 연합국 함정을 공격하도록 만들던지 아니면 라코니아호 생존자들을 모두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이 기회에 U보트를 격침시켜 화근을 없애버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결정을 하기가 RICHARDSON 대위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행위가 앞으로 어떤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있었더라면.........
격침명령을 받은 Harden 중위는 구조현장으로 기수를 돌렸고 4척의 잠수함을 폭탄과폭뢰(DEPTH CHARGE)로 공격했다. 그중 한발이 U-156 뒤를 따르던 구명정들 속에 떨어져서 폭발했다. 연합군측에서 자국민의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U보트를 격침시키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만큼 하르텐슈타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하르텐슈타인은 잠수함위에 타고있던 생존자들을 구명정에 옮겨타게 하거나 수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바다로 뛰어들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의 생명을 노리는 냉정한 전장에서 한 개인의 인도주의와 선의는 무참히 짓이겨졌다.
어쨋든 함장으로서 그는 50명이 넘는 부하들과 함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잠수함들은 공격으로 인해 손상을 입은채로 모두 잠항하여 현장을 이탈했다.
이로인해 수백명이 사망했지만 비시 프랑스(독일에 의한 괴뢰정부)국적함들에 의해 약 1100명이 다시 구조되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선원이었던 TONY LARGE는 무려 39일을 표류하다 구조되었다.

 

2. 되니츠의 분노

이때 까지만 해도 독일 잠수함대에 있어서는 격침후 승무원구조는 거의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대서양해전을 다룬 자료들을 보면 격침한 후 격침위치를 알려줘서 주변을 항해하는 선박들이 구조하게 하거나 가까이에 육지가 있는 경우에는 선장이나 선임승무원 몇 명만을 인질로 삼고 나머지 승무원에게 물과 음식을 제공하고 육지로 향하는 방향을 알려준 후 구명정에 태워보내곤 했다고 한다.
사실 이 호송선단이 운반하고 있던 물자들이 바로 전쟁에 쓰이는 물자이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고향을 공격하는데 쓰이고 있었지만 독일 잠수함대는 그들이 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하여 연합국은 더 큰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의 U-BOAT들이 적십자깃발을 내걸고 무방비 상태로 구조활동을 하고있는 동안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된 되니츠는 이 사건이후로 "라코니아 명령(LACONIA-ORDER)"으로 알려진 지시를 전 잠수함대에 하달한다.

 

라코니아 명령

1. 침몰시킨 선박의 생존자를 구하려는 모든 노력 (헤엄쳐가는 자를 함상으로 끌어올려 구조하는 행위, 그들을 구명정에 태워주는 행위, 전복된 선박을 바로잡아주는 행위, 물과 음식물을 주는 행위)는 전면 금지된다.

2. 이 명령에 있어서 선장과 상급 승무원의 나포는 예외로 한다.

3. 예외적인 생존자 구조는 그들의 진술이 정보로서 가치가 있는 경우로 제한한다.

4. 동요하지마라. 우리의 적들이 우리의 도시를 공습할 때 아이들과 여자들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위 명령이 하달된 후 모든 구조활동은 금지되었다. (물론 소수의 예외는 있었지만)
그 결과 침몰된 연합국선박의 승무원들은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져 처참한 죽음을 맞아야 했다. 독일 잠수함 4척을 격침시키려 했던 시도에 대해서는 너무나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다.

 

3. 라코니아사건의 결말

이 사건과 여타 다른 죄목으로 인하여 전후에 되니츠제독은 뉘른베르그 전범재판에서 전범으로 기소된다. 하지만 되니츠의 변호사들이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관 니미츠제독과 그의 잠수함대에 질의서를 보낸 결과 태평양전당시 미 잠수함대도 거의 유사한 상황하에 활동했다는 서면답변을 받게되어 고의적인 살해혐의는 벗어나게 되었다.
이후 그는 11년 6개월을 복역하고 출소하였다. 출소 후 전쟁 당시의 독일 잠수함전을 다룬 회고록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무런 잘못도 시인하지 않은 채 생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는 어쨌든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1980년 12월 14일 그의 장례식에는 각국의 해군고위인사 와 기라성 같은 과거 해군 동료, 부하들이 참석하였다.

 

후기

1. 베르너 하르텐슈타인과 그의 승무원들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그의 고향 Plauen, Vogtland 에서는 시민들에 의해 그를 기리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고 합니다.

 

2. "The Enemy We Killed, My Friend" 이라는 책에 의하면 라코니아 호 사건이 있은후에도 U-156은 영국선적의 "QUEBEC CITY"호의 생존자들을 구조합니다.(1942.9.19) 연합국의 공격도 하르텐슈타인의 선의를 바꿔놓지는 못했나 봅니다. 다시 생존자들에게 물과 음식물을 제공하며 서 아프리카 해안의 방향을 지시해주던 하르텐슈타인이 생존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좋은 여행되시고 안전하게 육지에 도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언젠가 보다 나은 세상에서 보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가십시오"

 

출처는 디지털 탐임즈와 대서양 결전!입니다.

 

라코니아호 사건을 처음 보게 된것은 다큐메터리 대서양결전을 보면서 평소 관심이 많은 독일 U보트에 숨겨진 내용이 있다는걸 알고 인터넷으로 검색 한 내용을 올린것입니다. 전쟁중 이엇기에 어쩔수 없다.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다.등 전쟁중 민간인 피해등에 항상 따라붇는 말이아니라 명령이라도 인명을 우선시한 사람도 있다는것에 감동을 받았습니다.아무리 국가 간에 싸움인 전쟁이라도 전쟁을 하고있는건 사람이라고 생각을 들게 해준 사건 이라 생각합니다.

 

라코니아호자료등에 보면 조금식 차이들이 있습니다.라코니아호가 무장한 선박이었다.미군이 공격을 했지만 피해가 없었다.미군이 공격을 해서 민간인 피해들이 있어다는등 조금식 차이들이 있습니다.

 

 

 

 

U-156 함장 베르너 하르슈타인

 

라코니아호가 유보트에 의해 격침당했다는 신문 보도

 

라코니아호

 

생존자들을 구조중인 U-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