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개/분쟁&독립 전쟁

1920년 바르샤바 전투 (Bitwa warszawska 1920, 1920 Battle of Warsaw, 2011) 평점 4.3

슐츠105 2011. 9. 30. 10:46

전쟁 | 폴란드 | 115 분 |

감독 예르지 호프만

출연 다니엘 올브리히스키 (조제프 필수드스키 역), 미하일 제브로브스키 (블라디슬라브 그라브스키 역), 그라지나 샤폴로프스카 (코르빈-피오트로브스카 역), 보거슬라브 린다 (볼레슬라브 비에니아바-들루고소브스키 역)

 

줄거리

세계 역사상 가장 중요한 군사적 대립 중의 하나를 그린 방대하고 역사적인 벽화, <1920년 바르샤바 전투>는 두 명의 평범한 인간이 투쟁에 휘말리는 서사시적 이야기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간을 따라 극단적인 사건들이 역사와 삶의 변화를 드러낸다. (2011년 16회 부산국제영화제)

 

 

 

 

 

 

 

 

 

 

<위키백과>

 

바르샤바 전투는 1920년 8월 12일부터 1920년 8월 25일까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근방에서 유제프 클레멘스 피우수트스키 휘하의 폴란드 군과 미하일 투하체프스키 휘하의 소련군이 벌인 전투이다. 폴란드-소련 전쟁의 가장 큰 전투였으며, 이 전투에서 기적적인 대승을 거둔 폴란드 군은 전쟁의 주도권을 완전히 휘어잡게 되었고, 소련군을 추적해 가면서 승전했다.

 

폴란드-러시아 전쟁

폴란드-소비에트 연방 전쟁(러시아어: Советско-польская война)은 1919년 2월부터 1921년 3월까지 폴란드와 소비에트 러시아 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폴란드, 소련 분쟁 지역은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원래 현대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러시아인이 속한 동슬라브족의 땅이었다. 그래서 이 땅은 키예프 공국의 땅 중 일부였다. 그 후 모스크바 대공국이 키예프 공국을 이어받았으나 이 지역은 당시 키예프 공국 서쪽에 있던 폴란드 왕국의 땅이 되었다. 1572년 폴란드에서는 야기에우워 왕조(폴란드어: Jagiellonowie)가 끝나고, 귀족들이 국왕을 선출하는 귀족 민주정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폴란드는 스웨덴과 전쟁, 모스크바 대공국의 마찰 등으로 인해 국력이 쇠퇴한다. 이러한 정세 속에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의 간섭이 시작되었고, 결국 1772년에 이들 세 나라에 영토를 빼앗기기 시작하다가, 1795년에 최종적으로 완전히 분할된다. 폴란드인들은 1830년에 대규모 봉기를 일으켜지만 결국 1년 만에 진압당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러시아는 혁명으로 인하여 혼란에 빠지고, 폴란드는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1918년에 독립하게 된다.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의 혼란을 틈타 옛 폴란드 왕국의 영토였던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등을 되찾으려 하였고, 이로 인해 소비에트 연방과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의 진행
 
1919년
폴란드군은 프랑스과 영국의 지원을 받고 동부전선에 총 23만명을 배치했다. 1919년 2월에 한때 적군에 잠시 밀리기도 했으나 네만강에서 벌어진 결전에서 결국 승리하였고, 빌뉴스에서 전투를 해 10월까지 드비나 강까지 진격하였다.(이때 리투아니아 독립 전쟁, 라트비아 독립 전쟁도 같이 벌어짐.)
 
1919년 12월까지 폴란드군의 전시 상황은 순조로웠지만 사실상 구 러시아 영토였던 점령지와, 연합국 간섭 등의 문제로 간섭 전쟁의 형태를 띠게 된다. 평화 협정도 진행하고 있었으나 폴란드 정치인과의 마찰로 인해 협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리투아니아는 더욱 상황이 악화되었기 때문에 결국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과 연합하게 된다.
 
1920년
이때부터는 적군의 반격이 시작된다. 게다가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와 강화협정을 성공해 병력을 폴란드방면으로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20년부터 70만명에서 80만명이 증강했다. 하지만 두 군의 무기를 보면 그렇게 결점이 나쁘지는 않았다. 폴란드에 망명하고 있던 페트류와 폴란드와의 사이에 바르샤바 조약을 맺어 우크라이나를 독립을 인정하고 동쪽 단치히를 할양하는 등에 맺었다.
 
한편, 폴란드군은 4월부터 반격을 지시해 5월에 키예프에 점령했다. 북쪽에서는 적군이 승리해 결국 폴란드 제1군은 후퇴하게 된다. 그 뿐만 아니었다. 남쪽에서도 몇 달 만에 키예프를 점령하고 계속 후퇴하게 된다. 7월에도 대규모 전투가 있었지만 결국 끝에 적군이 승리해 더 크게 후퇴하게 된다. 7월 14일에는 빌뉴스를 점령해 더욱 빠르게 진격한다. 8월 2일에는 바르샤바에서 60마일에 도착해 아예 점령할 위기에 처해있었다.
 
폴란드의 반격
 
바르샤바에 위험에 처한 동안 8월 14일에 미하일 투하쳅스키가 이끄는 적군이 패배한다.(비스와강의 기적) 폴란드군은 8월 17일에는 리비우에 시작으로 10월 중순에는 벨라루스의 민스크까지 진격하였다. 바르샤바 전투 이후 볼셰비키는 평화협정을 제의하였으며, 폴란드는 국제 연맹의 압력으로 인해 협상에 응한다. 10월 12일에는 협정을 체결하였고, 이 협정은 10월 18일에 발효됐다.
 
결과
 
리가 조약으로 인해 소비에트 러시아의 영토는 줄어들었고 폴란드는 서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를 얻었다. 하지만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독.소 불가침조약에 따라 소련은 폴란드가 차지하였던 영토를 수복하였고 원래 폴란드의 영토까지 빼앗아 리가 조약으로 소비에트 연방이 폴란드에게 빼앗긴 영토를 모두 돌려받았다. 얄타밀약에따라 소련의 조치로 폴란드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오데르-나이세 선의 이동지역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