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츠의 자막공방/존 라베 (2009)

장개석의 군사고문 팔켄하우젠

슐츠105 2011. 9. 20. 17:36

 

 

 

 

 

Alexander Ernst Alfred Hermann von Falkenhausen (October 29, 1878 – July 31, 1966)


이 사람이 중일전쟁 당시 상해에서부터 난징에 까지 이르는 방어선을 설계하고 국민당 군대를 훈련시킨 사람입니다. 1937년 일본과 독일이 추축국 협정을 맺으면서 독일로 강제 소환당합니다만 자신이 고안한 방어선이나 전략에 대해서는 입을 다뭅니다. 소환이후에도 장개석과 교유했고 1950년에는 장개석이 백만달러를 생일선물로 보내기도 하죠.

롬멜도 연루되었던 반히틀러음모에 가담했었고 이때문에 다하우수용소에 투옥되었습니다. 연합군에 석방되었으나 자신이 군정장관으로 있었던 벨기에에서의 벨기에인과 유대인에 대한 가혹행위와 학살로 인해 12년형을 선고받지만 그 자신은 가능한한 많은 벨기에인과 유대인을 구하려했다는 증거가 나오면서 2주만에 석방됩니다.

 당시에 이 독일군사고문단들의 목표는 60개의 잘 훈련된 사단을 양성하는 것이었습니다만 실제로는 8개의 사단만이 독일기준에 맞게 훈련시키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장개석이 참모들이나 팔켄하우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들 부대를 투입함으로서 초전에 주력부대를 상실하게 되죠. 팔켄하우젠의 전략을 일본을 장기전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서 이들 엘리트부대를 아끼도록 권고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군에 대항하기 위한 방책으로 게릴라전도 고안했었는데 장개석은 무시한 반면 도리어 홍군이 이를 채용하게 됩니다. 전략적으로는 양쯔강 이남의 지역의 방어에 충실하면서 이북의 지역은 전략적으로 포기하고 남쪽 방어를 위해서 토치카와 지뢰지대를 건설합니다. 장개석의 제갈량이 아닐런지...

팔켄하우젠의 안목은 이뿐만 아니라 중국군대를 각종 기동부대와 경무장 부대, 그리고 일차대전 시기에 맹활약한 스톰트루퍼같은 부대의 양성을 주장한데서도 볼수 있습니다만 문제는 이런 현대식 군대를 양성하기엔 당시 중국의 산업력이 미약했던데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부족한 현대식 군대였지만 이 8만명의 군대는 2차중일전쟁 개전초기 분투함으로서 중국인들에게 항전의지를 자극했고 일본군이 상해를 점령하고 난징으로 진격하기까지 수개월이 소요되게 한 중대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이때 일본군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엄청난 손실을 냈습니다. 일부일본인들은 이때 많은 일본군들이 패닉에 빠졌고 중국군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던 것이 난징에서의 대학살로 이어졌다고도 주장하죠. 물론 믿거나 말거나입니다만....

암튼 당시 국민당군대는 대단히 잘싸웠었다가 정설이겠습니다. 문제는 중일전쟁과정에서 황포군관학교 출신의 정예장교들과 정예병사들 상당수가 상실되었고 전쟁이 끝이 나고서 팔로군과 대적할때는 장교나 정예병사들의 숫자가 크게 부족했고 이에 따라 엄정한 군기의 유지도 힘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2009-06-18 23:54:19

 

출처 : 유용원의 군사세계

작성자 : 구데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