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개/근대 전쟁

대장부리바 (Taras Bulba, 1962)

슐츠105 2013. 1. 21. 21:48


어드벤처 | 미국 | 120 분 | 

감독 J. 리 톰슨

출연 율 브리너, 토니 커티스, 샘 와나메이커, 가이 롤페

 

줄거리
폴란드가 터키의 침공을 받자, 폴란드에 인접한 기마족 코사크는 폴란드와의 동맹국으로서 전쟁에 참여한다. 하지만 폴란드가 배신하자, 코사크족은 대초원을 되찾기 위한 재기와 복수를 다짐한다. 이들 중 한 사람인 용맹한 용사 티라스 부리바(Taras Bulba: 율 브리너 분)는 이즈음 아들 안드레이(Andrei Bulba: 토니 커티스 분)를 낳고 용감한 용사로 키우려한다. 청년으로 성장한 안드레이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학문을 배우기 위해 동생과 폴란드의 학교에 들어간다. 코사크라는 이유로 많은 배척을 받던 안드레이는 폴란드의 귀족 처녀 안드레이를 보고 한 눈에 반한다. 두 사람이 사랑하는 사이가 되자, 이를 시기한 나타리아의 애인인 알렉스 대위(Captain Alex: 리차드 러스트 분)를 살해하게 되고 안드레이와 그의 동생은 탈출을 감행하여 2년만에 초원의 집으로 돌아온다. 티라스는 폴란드 제국과의 동맹 협정으로 전쟁을 반대하고 있는 족장 니콜라스를 물리치고 진군한다. 마침내 폴란드와 코스크와의 대규모 전쟁이 시작되는데, 티라스가 지휘하는 코사크는 폴란드군을 제압하고 드브르 성을 포위한다. 부상을 치료한 안드레이는 성안에 있는 나타리아(Natalia Dubrov: 크리스틴 코프만 분)를 만나기 위해 어둠을 틈타 성안에 잠입하여 안드레이와 재회하지만, 결국 함께 잡히고 만다. 나타리아가 화형에 처할 위기를 맞자 안드레이는 그녀를 구할 조건으로 성밖의 소떼를 끌고 올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아버지 티라스와 맞닥뜨러진 안드레이는 결국 총을 받고 쓰러진다. 이때 폴란드군은 총공격을 감행하자, 코스크는 이를 무찌르고 큰 희생 끝에 승리한다. 나타리아는 들판에 쓰러져 있는 안드레이의 시신을 발견하고는 슬퍼한다.

 

 

 

 

 

 

 

 

 

 

 

 

 

 

 

 

 

코사크 기병대에 대한 자세한 정보 -> http://rozanov.egloos.com/1129477

 

 

<위키백과>

카자크(우크라이나어: козаки́; 러시아어: каза́ки; 폴란드어: Kozacy) 또는 코사크는 15세기 말 부터 20세기 초까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남부에 있었던 군사 집단이다. 구성원의 출신 국가는 다양하였다.

 

개요
 
15세기 말 우크라이나의 중앙 지역을 가로지르는 드니프로 강을 중심으로 한 자포리쟈 지역에서 자포로쟈 카자크가 처음으로 결성되었다. 16세기에는 돈 강 유역을 중심으로 돈 카자크가 결성되었다.
 
자포로쟈 카자크는 애초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봉신으로서 출발하였다. 초대 헤트만이었던 보흐단 크멜니츠키가 반란을 일으켜 잠시 동안 카자크 헤트마네트라는 이름으로 독립하기도 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진압당하였다. 1654년 페레야슬라프 조약으로 우크라이나의 대부분 지역이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카자크는 이후 3백여년간 러시아의 통치를 받았다.
 
카자크의 역사
 

 

카자크의 기원
 
현재 카자크의 출현에 관한 다양한 학설이 존재하고 있다. 역사학자인 샴바로바(В. Шамбарова)와 구미료바(Л. Гумилёва) 박사의 견해에 따르면, 카자크 인들은 확실히 몽고-타타르 군대의 침입 후에 카소그(Касог)와 브로드닉(Бродник)의 통합에 의해 형성되었다. 카소그인들은 옛날 카프카즈의 민족으로 10~14세기에 쿠반 강 하류 지역으로 이주하였었다. 브로드닉들은 터키-슬라브 민족 출신으로, 12세기에 돈 강 하류에 부락을 이루면서 살았다.(그 당시 이들은 키예프 루시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몽골인들에 의한 정복 후에 카소그 인들은 북쪽으로 피난을 가게되고, 돈 강 유역의 브로드닉 민족과 융합되었고, 자신들의 이름을 계승하여 카자크(казак)라 불렀다. 그리고 그때 브로드닉들은 몽골 측에 투항하여 깔까(Калка)강에서의 전투에서 루시를 격퇴하였다. 그리하여 카자크인의 최초의 조직이 정비되었고, 타타르인들에 의한 복속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몽골군은 피정복민인 카자크인들이 그들 자신의 종교를 보존할 수 있도록 하였고, 또한 몽골군 중에는 카자크 군에 투항한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카자크인들에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존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사파이스코-포돈스코에(Сарайско-Подонское)교구도 있었다. 금장한국의 분열 후에 금장한국의 영역에 남겨진 카자크인들은 자신들의 군대 조직을 보존할 수 있었고, 그때 이들은 분열된 제국의 일부분이었던 노가이 한국(Ногайская орда)과 크림 한국(Крымское ханство)으로부터 독립하였으며, 루시를 침입했던 모스크바 공국으로부터도 자유로웠다. 그리고 1380년 카자크들은 드미트리 돈스코이에게 "돈 강의 성모(Донской Богоматери)"라는 이콘을 바치고 쿨리코보 전투에서 마마이에 대항하여 싸웠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