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개/2차대전 홀로코스트

업라이징 (Uprising, 2001) 7.2

슐츠105 2013. 1. 31. 21:56

한글자막 --->

Uprising.2001.720p.WEB-DL.DD5.1.H.264-ViGi.smi

 

전쟁 | 미국 | 177 분

감독 존 애브넛

출연 존 보이트, 릴리 소비에스키, 행크 아자리아, 데이비드 쉬머 

 

줄거리

1939년 폴란드 바르샤바, 폴란드는 독일에 의해 침공당하고한달도 못가서 항복을 선언한다. 독일군은 바르샤바에 있는 유태인들을 게토로 옮기고 그들을 철저히 격리되고 감시당한다. 배고픔으로 처참한 생활을 하던 유태인들의 분노는 더해가고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혁명의 싹이 트기 시작한다. 유태교 평의회의장 체르니라코브는 유태인들의 생명을 지키고 권익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역부족이다. 그의 운전기사를 하고 있는 카직과 팔레스타인으로 탈출하려다가 붙잡혀 다시 게토로 돌아온 다혈질의 모데카이, 그리고 그의 친구 이작은 무기를 모으고 독일에 대항하기로 결심한다.

 

 

 

 

 

 

 

 

 

 


 

 

바르샤바 게토 봉기(Warsaw Ghetto Uprising)

 

바르샤바를 떠나 트레블링카 집단학살 수용소로 이송되는 것에 대항해 1943년 4월 19일에 일어나 4주 뒤인 5월 16일 진압되었다. 유럽에서 유대인을 없애기 위한 히틀러의 '마지막 해결책'의 하나로 독일은 점령지역 곳곳에 유대인들을 처형할 때까지 가두어 두는 게토를 세웠다. 처음에는 가시철조망이었으나 나중에는 높이 3m, 길이 18㎞의 벽돌담으로 둘러싸인 바르샤바 게토는 전에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던 지역에 세워졌다. 여기에는 주변지역의 모든 유대인이 수용되어 1942년 여름에는 약 50만 명의 유대인들이 3,399㎡의 지역 안에서 살았다. 대부분은 주택이 전혀 없었고, 있다고 해도 한 방에 평균 13명이 빽빽이 채워졌다. 기아와 질병(특히 장티푸스)이 매월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942년 7월 22일을 시작으로 하루 평균 5,000구의 시체가 트레블링카의 사망자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1943년 1월 나치는 펴온한 시골에 있는 '노동수용소'로 옮긴다고 유대인을 속여 대부분의 게토를 비웠다. 그러나 소수 유대인은 트레블링카를 탈출했으며 유대인 소송은 사실살 가스실로의 일방통행적인 이동이었다는 말이 바르샤바 게토 지하조직에 전달되엇다.1월 18일 독일군은 유대인을 수송하기 위해 게토에 들어갔으나 지하조직인 유대인 전투조직(Zydowska Organizacja Bojowa/ZOB)의 무장 기습공격을 받았다.

시가전이 4일 동안 계속되면서 약 50명의 독일군과 이보다 더 많은 유대인이 죽었으나 이 사건으로 ZOB는 독일군의 무기를 포획할 수 있었다. 독일군은 철수하고 수송작전은 같은 해 4월 19일까지 일시 중단되었으나 나치 친위대(SS) 대장 하인리히 히믈러는 히틀러 생일인 4월 20일을 기념해 무력으로 게토를 소탕하는 특별 '행동'을 시작했다. 또한 4월 19일은 유대인들이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逾越節)의 첫날이었다.

먼동이 트기 전 2,000명의 SS대원과 무장군대가 탱크, 속사포, 탄약 트레일러 등을 앞세우고 게토에 쳐들어왔다. 게토에 남아 있던 대부분의 유대인이 미리 마련한 벙커 속에 숨어 있는 동안 ZOB와 일부 유대인 게릴라 독립부대 약 1,500명은 권총, 소총 몇 개, 기관총 1정, 손으로 만든 폭탄 등으로 사격을 가하면서 많은 탱크를 파괴하고 독일군을 죽이면서 게토로 침입하려는 증강군을 물리쳤다. 독일군은 저녁에 철수했으나 다음날 싸움이 재개되었고 사상자 수도 늘어났다.

독일군들이 유대인을 벙커에서 쫓아내기 위해 가스·경찰견·화염방사기 등을 사용했기 때문에 도시 전체는 며칠 동안 화염에 휩싸였다. 같은 해 5월 8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나치는 ZOB 본부 벙커를 제압할 수 있었다. 그곳에 숨어 있던 민간인은 모두 항복했지만 카리스마적인 젊은 지휘관 모르데차이 아니엘레비치를 비롯해 살아 남은 ZOB 전사(戰士) 대부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5월 16일까지 일방적인 전투가 계속되다가 유대인의 탄약이 떨어지면서 전투는 점차 산발적으로 되었다. 봉기의 전체 희생자수는 확실하지 않으나 28일 동안의 전투에서 수백 명의 독일군이 죽었고 5만 6,000명이 넘는 유대인이 살해되거나 압송되었다고 한다.

SS의 위르겐 스트로프 소장은 바르샤바의 대회당을 폭파해 최후의 일격을 가했으며 뒤에 "바르샤바 게토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Uprising.2001.720p.WEB-DL.DD5.1.H.264-ViGi.smi
0.3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