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개/기타

K-19 위도우메이커 (K-19! The Widowmaker, 2001)

슐츠105 2013. 2. 2. 17:29

드라마, 스릴러 독일, 영국, 미국 138분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
출연 해리슨 포드(알렉세이 보스트리코브), 리암 니슨(미하일 폴레닌)

 

줄거리
운명의 리더, 그는 영웅이다!

{25년 동안 이 이야기를 밝힐 수 없었다. 1961년, 소련은 세계를 2번이나 파괴할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고, 미국은 세계를 10번이나 파괴할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두 나라는 더 많은 핵무기를 계속 만들었다. 미국은 레닌그란드와 모스크바를 사정권에 둔 핵잠수함을 전진 배치시켰다. 양측의 권력자들은 전쟁이 피할 수 없다고 믿었고, 선제 공격을 누가 하는지만 남아 있었다.}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61년 소련은 소련 최초의 핵탄도 잠수함인 K-19을 완성한다. 이 잠수함은 'widowmaker(과부 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제조 과정부터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뒤따른 고된 작업이었다. 드디어 K-19에도 첫 임무가 주어지고 사람들의 기대 속에 항해가 시작된다.
  하지만 항해 도중 노르웨이 해안 근처 북해 한가운데에서 원자로 냉각기가 고장난다. 냉각기 고장은 원자로 폭발로 바로 이어질 만큼 치명적이다. 뿐만 아니라 그곳은 나토 기지와 불과 1마일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여서 만약 원자로가 폭발한다면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날 극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K-19은 본국과의 연락마저 끊기게 되고 잠수함 함장인 알렉시 보스트리코브(해리슨 포드)와 부함장 미카일 폴레닌(리암 니슨)은 자신들에게 직면한 K-19과 세계의 위기를 어떻게든 극복하고자 하는데.

 

 

 

 

 

 

 

 

 

 

 

 

 

 

 

K-19 (위키 백과발췌)

 

 

 

K-19는 소련의 1 세대 전략원잠인 프로젝트 658, 658M급 잠수함(나토 분류명 호텔급 잠수함)의 첫 번째 함이다. 나중에 통신함(프로젝트 658S)으로 바뀌면서 함명이 KS-19로 바뀌었다. 1958년 10월 17일 건조에 착수하여 1959년 4월 8일 진수하여 1960년 11월 12일 모든 시험에 통과하였고, 1961년 4월 30일 취역하였다. 건조 및 운영 기간 동안의 많은 사고로 인해 승조원들 사이에 히로시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990년 4월 19일 퇴역하여 2002년에 해체되었다. 20,223 시간의 운영 기간 동안 332,396 마일의 거리를 항해하였다. 1961년 7월 3일날 이 배에서 일어난 일을 재구성한 영화 K-19 위도우메이커가 2002년에 개봉되었다.

 

역사
1957년 10월 16일 - 소련 해군이 건조 주문
1958년 10월 17일 - 세베로드빈스크(Severodvinsk)에서 잠수함 발사 전략 탄도 미사일 탑재함으로 기공.
1959년 - 밸러스트 탱크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3명이 화재로 사망.
1959년 10월 11일 - 진수식에서 배에 부딪힌 샴페인 병이 깨지지 않음. (진수된 모든 배는 진수식에서 함수에 샴페인 병을 부딪히는데 이때 이 병이 깨지지 않으면 불길한 징조로 간주한다.)
1960년 7월 12일 - 최초 엔진 가동
1960년 7월 13일 ~ 7월 17일 : 1차 해상 시험 가동. 이 기간 중 1차 냉각계 압력이 계획된 최대치의 2배가 되는 사고 발생함. 소련 해군은 사건을 은폐했다.
1960년 12월 12일 - 국가 원잠인수 관리위원회가 K19 수령증에 서명. 그런데 이 날에 미사일 발사통 해치가 떨어져 노동자 1명이 사망함
1960년 12월 18일 - 조선사 기사가 낙하사고로 사망
1960년 11월 12일 - 니콜라이 블라디미로비치 자테예프(Nikolai Vladimirovich Zateyev)가 첫 번째 함장으로 취임.
1961년 6월 7일 - K19는 북해 함대 특별원잠여단에 편입
1961년 7월 3일 - 북해 함대 훈련 참가 중 1차 냉각계 수압 저하 및 방사능 누출 사고 발생. 영화 《K-19》는 바로 이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원자로 설계 기사가 승무원들이 목숨을 걸고 보수 작업을 한 덕분에 원자로가 녹아버리는 대형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라는 보고서를 낸 덕분에 승무원들은 영웅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고 후 방사능증으로 사망한 승무원 숫자에 대한 통계는 밝혀진 것이 없다.
1969년 11월 15일 - 바렌츠 해에서 훈련 중에 미해군 공격원잠 SSN-615 가토(Gato)와 충돌 사고 발생.
1972년 2월 20일 - 조종타 유압장치 파이프 파열로 오일 500리터 유출
1972년 2월 24일 - 9구역 탄소가스처리장치 고장으로 화재 발생. 1961년 사고때처럼 견인되었다. 견인 과정에서 구조작전에 참가한 북해함대 함정은 모두 27척이었다.
1972년 11월 - 화재 사고 발생. 사망자 없음.
1978년 11월 15일 - 6구역 화재 발생.
1979년 6월 26일 - 통신함으로 재분류하면서 KS-19로 개칭.
1982년 8월 15일 - 전기 합선으로 승무원 2명이 부상. 그중 한 명인 V.A. 크랍추크(V. A. Kravchuk)는 8월 20일에 병원에서 사망했다.
1985년 11월 28일 - 658S형으로 성능 개량.
1990년 4월 19일 - 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