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츠의 자막공방/레드 바론 (2008)

1차대전의 에이스 "붉은 남작" 리히트호펜

슐츠105 2011. 9. 22. 10:51

 

출처 : 다음 백과

 

별칭은 Der Rote Freiherr(붉은 남작), Der Rote Kampfflieger(붉은 비행사). 1892. 5. 2 독일 브레슬라우(지금의 폴란드 브로추아프)~ 1918. 4. 21 프랑스 보쉬르솜.

독일의 최고 비행사.

 

제1차 세계대전 때 일류 전투기조종사로 활약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리히트호펜과 그의 동생 로타르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직업군인이 되었고, 1912년에 리히트호펜은 프로이센군 울란 제1기병 연대의 중위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뒤 이 연대 소속 장교로서 러시아에 종군했고, 이어서 벨기에와 프랑스 침공작전에도 참가했다. 참호전이 정착하면서 기병대의 참전이 불가능해지자, 그는 보병대에 들어갔다. 1915년에 공군으로 전속했고, 1916년 9월에는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그후 제1전투비행대 대장이 되었는데, 이 비행대는 비행기를 주홍빛으로 장식했기 대문에 '리히트호펜의 날으는 곡마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그 자신은 80대의 적기를 격추시켰다는 명예를 얻었다. 그는 삼엽기(三葉機)인 빨간색 포커 전투기를 타고 프랑스 아미앵 근처에서 싸우다가 오스트레일리아군의 집중포화를 맞고 전사했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영국 공군 소속인 캐나다의 A. 로이 브라운 대위에게 격추당했다고 한다. 그의 후임으로 전투비행대 대장이 된 사람은 헤르만 괴링이었다

 

 

----------------------------------------------------------------------------------------------펌 :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62&articleId=7573

 

 

전쟁에는 낭만이 없다. 피가 흐르고 화약 연기가 휩싸인 전장 그 어느 곳에도 참혹함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단 하나 낭만이 허용된 공간이 있으니, 그곳은 바로 하늘일 것이다.


바로 옆에서 동료가 쓰러지며, 팔다리가 날아가고, 급할 때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라도 적을 사살해야 하는, 얼굴을 맞대는 전장에서 그 누구도 낭만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군은 다릅니다. 적들의 얼굴을 확인할 필요도, 단지 내가 상대하는 것은 적의 전투기일 뿐이며, 죽는 순간에는 한순간 하늘에서 불타올라 목숨이 다할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때로 공군 조종사들은 비행의 낭만을 이야기합니다.

Ace라는 말은 참 이상합니다. 적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가에 따라 칭해지는 칭호입니다. 대략 10기의 적기를 격추시키면 Ace의 칭호가 내려지는데 이는 단순히 계산해볼 때 한번 출전했을 때 살아돌아올 확률을 1/2로 보면 한번의 출격에 1기를 격추시킨다고 계산하면 1/1024 의 확률로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그 확률을 1로 만들기 위해서는 실력이 어떠한지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 가운데 총 80기의 격추기록을 세운 에이스가 있습니다. 바로 독일의 붉은 남작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Manfred von Richthofen


원래 기병학교 출신이었던 그는 1차 대전이 발발하고 참여한 전쟁에서 곧 기병대가 필요없어짐을 깨닫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참호전 위주로 이루어진 전쟁에서 기병대의 존재란 별 쓸모가 없었으니까 말입니다. 그 후로 보급장교로 복무하다 정찰기를 타게 된 것을 계기로 하늘에 매력을 느끼게 된 리히트호펜은 전투 비행 기술을 익힙니다. 이 후 새로운 비행대대 창설을 위해 후보자를 찾던 오스왈드 뵐케의 눈에 띄어 야스타 2 비행대대에 선발됩니다.

그 후 1916년 9월 17일 프랑스 상공에서 첫 공식 격추기록을 획득합니다. 그는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베를린에서 보석상을 하는 친구에게 격추 날짜와 적기 유형이 그려진 은컵을 주문하며, 이는 봉쇄작전으로 독일에 은 공급이 제한될 때까지 총 60여개의 컵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Fokker Dr.I


그가 붉은 남작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에는 자신의 기체를 피처럼 붉은 색으로 채색한 것에서 기인합니다. 또한 리히트호펜의 대표적인 기체로는 포커 Dr.I 라는 삼엽기가 유명한데, 사실 그의 기록 가운데 오직 20기만 포커 Dr.I 였고 대부분은 알바트로스 D.III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포커 삼엽기는 재빠른 기동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붉은 남작의 대표적인 기동방법은 상대보다 높은 고도에서 아래쪽의 적기를 향해 급강하하여 치고 다시 상승하는 이른바 Boom and Zoom 전법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붐앤줌 전법에는 선회력과는 큰 상관이 없었기에 포커 삼엽기 보다는 익숙한 알바트로스 기체를 더 선호한게 아닌가 합니다.

 


Albatros D.III

그러나 개인적으로 포커 삼엽기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독일 조종사들의 사기를 생각해서 포커삼엽기는 좋은 기체라고 자주 이야기하고 다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늘씬한 체형에 금발 머리, 그리고 핸섬한 얼굴로 전쟁 영웅이자 국민적 영웅이었던 그는 독일 여성들에게도 우상과 같은 존재였으며, 나날이 늘어가는 격추수는 당연히 그가 100기를 달성할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1918년 4월 21일 영국의 캐멀기를 쫓아 적진으로 깊숙히 들어갔던 그는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에 폐를 관통하여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한 단 한발의 총알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데 일각에서는 아군기가 쫓기는 것을 보고 뒤에서 추격한 브라운 대위에 의해 격추되었다고도 보며, 다른 한편에서는 지상군이 쏜 총알에 맞았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총알이 조종석 뒷쪽 아래편에서 뚫고 들어와 가슴을 관통한 것으로 보아 후자 쪽에 조금 더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Roy Brown


붉은 악마, 붉은 기사, 붉은 남작 등으로 연합군에게 불렸던 그는 상당히 신사적이었다고 합니다. 적기의 추락이 확실시되면 더 이상의 공격은 하지 않았기에 의외로 그에게 격추당한 전투기들 가운데 생존자도 꽤 있었다고.

그 때문에 연합군 측에서는 만약 그가 생포되었다면 악수를 나눠보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전해지며, 비록 적군이지만 영국군의 추도 가운데 안장되었다가 전쟁이 끝난 후 유해가 베를린으로 옮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