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츠의 자막공방/레드 바론 (2008)

누가 붉은 남작을 죽였나?

슐츠105 2011. 9. 22. 11:06

펌 : http://user.chol.com/~hartmannshim/killbaron.htm

 

 

남작의 장례식

 

 

1918년 4월 21일, 3대의 포커기가 제3 오스트레일리아 비행단 소속 R.E.8 정찰기 2대를 공격하기 위해 출격했다. 연합군의 대공포는 그들의 정찰기를 엄호하기 위해, 대공포를 연속 발사하기 시작했다. 8대의 숍위드 카멜기를 지휘하며 고공에서 날고 있던 캐나다인인 로이 브라운 대위는 이 광경을 목격한다. 곧 독일의 알바트로스기 몇대가 이 공중전에 참가했고, 뒤이어 새로운 포커기들이 합세했는데, 이포커기들 중에는 모든 기체가 붉은 도색으로 장식된 남작의 삼엽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로이 브라운은 후에 이렇게 썼다. "오전 10시 35분, 나는 두대의 독일의 알바트로스기가 화염에 휩싸인 채 추락하는 것을 목격했다. 약 15대에서 20대 가량의 커다란 알바트로스기와 포커 삼엽기 편대가 급하강해 왔고, 그중 두대가 나의 꼬리를 잡았다. 그러나 나는 그속을 헤쳐나왔다.
   
또 다른 젊은 캐나다인,
윌포드 메이는 그의 첫번째 정찰 임무 수행 도중이었다. 그의 친구 브라운은 그에게 상공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메이도 그말을 따랐지만, 점점 전투에 참가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는 하강을 시작했고, 30기 이상의 적기에 둘러 싸여, 거의 제정신을 못차리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공중전에서는 가장 위험한 방법 즉 단순한 직선 수평비행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리흐토펜은 공중전이 한창 벌어지는 곳 바로 윗쪽에서 비행하며, 먹이를 찾고 있었고, 직선 비행으로 달아나는 메이를 발견하고 곧 추격을 시작했다. 메이는 남작이 첫번째 사격을 해오자, 회피기동에 들어갔다. 메이와 남작은 지상 바로 위까지 하강했고 추격전을 계속했다.

위에서 그광경을 지켜보던 브라운은 자신이 남작의 비행기의 시선을 끌지 않으면, 그의 친구 메이는 격추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최고 속력으로 급하강을 시작했고, 곧 메이를 쫓고 있는 남작의 포커기 뒤로 바짝 달라 붙었다. 그는 메이가 격추 당하기 전에 끝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사격을 시작했고, 포커기는 하강하면서 나무숲사이로 사라졌다.

브라운은 후에 이렇게 썼다. " 나는 다시 돌아와서, 메이를 향해 사격을 가하고 있던 붉은 포커기를 향해 급하강했죠. 나는 계속 포커기를 향해 발사했고, 그 포커기는 수직으로 추락해 가더니 숲속으로 떨어졌어요. 이 광경은 메이와 멜러쉬에 의해서도 목격되었어요."


그러나 브라운의 이런 주장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꽤있다. 브라운이 급하강으로 얻은 속력으로 하강하자마자, 남작의 전투기 뒤에 바짝 붙었다고 했는데, 그정도의 속력이라면 하강 직후에 남작의 뒷쪽에서 바로 남작의 앞으로 오버슛하게 마련이란 것이다.

또 지상에 있던 많은 오스트레이리아 보병들의 말에 따르면, 추격전 당시 브라운의 주장대로라면, 3대의 전투기가 목격되었어야 하는데, 단지 2대의 비행기만을 보았다고들 한다. 그 2대는 다름아닌 메이와 그를 쫓고 있던 남작의 비행기였다. 지상의 기관총 사수들은 메이의 비행기가 지나가길 기다린후, 남작의 삼엽기가 다가오자 일제히 기관총 사격을 개시했다. 그때 사격을 했던 사수 중에는 로버트 부이라는 농부출신의 사수가 있었다. 프랭크 워말드라는 보병도 로버트 부이 바로 몇 발자국 옆에서 로버트 부이가 남작을 향해 루이스 기관총을 쏘아대는 광경을 목격했다.

 

밀러 박사(Dr. Miller)의 견해

 

(밀러박사는 1997년 영국에서 출판된 "붉은 남작의 마지막 비행"이라는 책에 그의 논문이 시린 일차대전 연구가임)   
"붉은 남작의 마지막 비행의 저자들은 모두 브라운 대위가 남작의 오른쪽에서 공격했다고 한것은 그가 조작한 허구라고 말했죠. 왜냐면 그가 후에 그장면을 재현해 보였을 때, 그들은 남동쪽에서 남작에게로 접근했다고 했는데, 남동쪽은 남작의 왼쪽이 되죠."

왜 이렇게 남작의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하는 방향이 문제거리가 될까?

 
 
그것은 남작의 사체부검 결과 총탄이 남작의 오른쪽 가슴을 통해 파고들어 왼쪽앞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브라운 대위가 주장한 말은 남작의 치명상과는 정반대의 대립을 이루는 것이다. 즉 브라운의 접근 방향은 남작의 왼쪽이었고, 그방향에서 남작의 오른쪽 치명상을 절대 입힐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밀러 박사는 오스트레일리아 전쟁 기념관의 자료를 연구한 후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가장 치명적인 상처는 우측 등의 9번 갈비뼈부위에서 몸으로 파고들기 시작한 총탄때문이었다. 총탄이 남작의 척추뼈를 관통했는지 여부는 불명확하다. 총탄의 몸으로 진입한 경로와 배출경로를 이어 보면, 총탄은 남작의 우측에서 파고들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총탄이 몸에서 나온 구멍은 좌측 젓꼭지 부근이며, 이것은 총탄이 남작의 심장을 관통했고, 남작은 그자리에서 즉사했을 가능성을 시사해준다. 남작은 약 20에서 30초 이내에 의식을 잃었을 것이고, 그의 비행기를 더 이상 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메이는 쫓기며 1분이상을 날았다고 했는데, 이런 메이의 말도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직도 붉은 남작을 격추시킨 이가 누군가하는 문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를 쫓아 내려온 브라운이었을까?...지상의 기관총 사수 부이였을까?

 

 

----------------------------------------------------------------------------------------------<토픽> `붉은 남작' 전투기 지상포화에 격추돼

 

 

(파리 AFP=연합(聯合))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조종사로서 연합군 전투기 약 80대를 격추시킨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남작(일명(一名) `붉은 남작')의 애기는 공식 기록과는 달리 공중전이 아닌, 지상포화에 격추됐다고 24일 프랑스 역사학자들이 주장.

지상포화 격추설은 최근 영국에서 발간된 "붉은 남작의 최후"의 주장을 거듭 뒷받침하는 것으로, 지금까지는 캐나다 조종사 로이 브라운이 공중전에서 그의 전투기를 격추한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이들 프랑스 역사학자들이 찾은 기록에 의하면 지난 1918년 4월 21일 프랑스 북동부 솜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붉은 남작'의 전투기가 공중전을 벌이는 와중에서 호주 제14 포병연대 제53대공포중대가 발사한 두 발의 포탄을 맞고 격추됐다는 것.(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