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개/고대 ~중세 전쟁

훈족의 왕 아틸라 (Attila, 2001) 6.6

슐츠105 2013. 7. 21. 14:40

액션,어드밴쳐,전기,드라마,역사,로맨스,전쟁 | 미국,리투아니아 | 177 분 | 

감독 딕 로리

출연 시몬느 맥키넌, 팀 커리, 레그 로저스, 파워스 부스

 

줄거리
로마 말, 서로마와 동로마 제국으로 나뉘어 통치되던 시절, 부패와 향락이 만연했지만 여전히 대제국으로서 위세를 떨치고 있을 때다. 당시 훈족은 로마에 근접한 방랑민으로 여러 부족 중 하나였으나, 이탈라가 왕으로 즉위하면서 부족들을 전부 통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로마에까지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여왕 플라시디아가 지배하는 서로마에선 남매 호노리아(Honoria: 커스티 밋첼 분) 공주와 발렌티니안(Valentinian: 레그 로저스 분) 왕자 중 왕자가 대를 이으려고 한다. 위기에 처한 로마는 감옥에 갇혀 있던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Flavius Aetius: 파워스 부스 분)를 장군으로 복직시킨다. 그 훈족과 친분이 있고 습성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이탈라를 설득해 로마에 초대하고 동맹 관계를 맺으려 하는데...

 

 

 

 

 

 

 

 

 

 

 

 

 

 

 

출처 엔하위키 미러 http://mirror.enha.kr/wiki/%EC%95%84%ED%8B%B8%EB%9D%BC

 

 

아틸라

 

 

 

Atilla/Attila the Hun (영어)
Atle, Atli (고 노르드어)
Etzel (독일어)
Attila hun király (헝가리어, 어틸러 훈 키라이)


406~453
재위 434~453년


훈족의 왕. 훈족 최후의 왕이라 일컬어진다.


서양에서는 흔히 '훈족의 아틸라(Atilla the Hun)'이라고 부른다.

 

훈족 군대를 이끌고 로마인들과 게르만족들을 침략하여 일명 신의 형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 일생
초기에는 그의 형인 블레다(Bleda)와 함께 훈족을 통치하였는데 이때도 아틸라가 정치적인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통설이 있으나, 이는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친 아틸라의 위상을 높이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실제론 그냥 형 밑에서 상당히 독립적 세력을 가진 2인자정도로 보는게 옳을 것이다. [1]


형인 블레다가 죽고난 이후에는[2] 마침내 훈족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당시 훈족의 위세는 최절정기로 중부 유럽의 게르만족 국가들이 훈족에게 멸망당했고 동, 서로마는 훈족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조공 형식의 공물을 바치기도 했다.


동로마 제국의 조약위반 등으로 양국의 관계가 악화되자 아틸라는 1차로 동로마를 공격하였다. 이 공격으로 동로마는 베오그라드가 함락되고 발칸 반도의 대부분이 쑥대밭이 되었으며 2차 원정에서는 마침 콘스탄티노플 성벽이 지진으로 크게 훼손되어 겁에 질린 동로마가 영토 할양과 두배의 공물을 바치기로 하고 협약을 맺는다.[3]


이후 공물 받으며 세월을 보내대가 동로마가 본격적으로 협약을 파기하고 영토 수복에 나섰는데 때마침 서로마의 황녀인 호노리아와 일이 터진다.[4] 공물을 받으며 세를 과시하긴 했지만 동로마의 국력은 확실히 만만히 볼게 아니었고, 반면에 서로마는 이미 여러모로 세력이 약화되어 원하는 만큼의 이득을 챙길수 있다고 본 아틸라는 동로마의 공세를 거의 무시하는 방향으로 일관하면서 서로마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마침 갈리아 북부의 프랑크족까지 세력다툼으로 아틸라에게 구원을 요청하자 훈족과 복속시킨 여러 이민족들의 전력을 끌어모아 10만 이상의 전사들을 이끌고 라인강을 넘는다.
여기에 서로마의 군사령관이었던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와 서고트족의 테오도리크 1세는 손을 잡고 갈리아 내 여러 약소부족들을 끌여들여 연합군을 편성, 카탈루니아 평원(현재의 오를레앙)에서 전투를 치룬다.


후에 카탈라우눔 전투라 불리는 전투에서 아틸라군은 패배하였다. 이때 아틸라는 진영 함락시 진영을 불태우고 자결하려고 하였으나 훈족의 소멸을 원치 않았던 아에티우스에 의해 살아남는다.


이후 2차 원정에서는 호노리아와의 결혼과 그 지참금을 달라고 요구하며 이탈리아로 넘어들어왔는데, 서로마의 군사력으로 이를 막기엔 무리였고 결국 라벤나까지 진격, 교황 성 레오 1세가 로마까지 초토화될 것을 우려해 아틸라에게 강화를 제안했고 아틸라는 이를 받아들였다.

 

 


아틸라는 세계정복을 꿈꿨고 사산 왕조 페르시아까지 공격할 계획을 세우지만[5] 결혼식 첫날밤에 급사해버리면서(그래서 복상사로 추정하기도)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의 사후 훈족의 위세는 거짓말처럼 무너져 버렸다.

 

 

2 평가
동, 서로마와 게르만족에게 아틸라와 그가 이끄는 훈족은 가히 공포이자 신의 심판이었다. 그도 그럴듯이, 이전의 유럽에서는 그토록 무자비하게 학살과 약탈을 저질렀던 족속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당시 유럽인들은 아틸라와 그의 군대를 신의 심판이 현실화 된 것이라고 묘사하였으며 아틸라를 가르켜 공포의 대왕이라고 묘사하기도 하였다. 이쯤되면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해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악마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6]


아틸라와 훈족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유럽의 여러 전설에도 상당히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게르만 계열 전설에는 위엄있고 강대한 군주로 묘사되나[7], 바이킹 계열 전설에선 술고래(...) 정도의 이미지로 묘사된다. 또한 기독교와 관련된 전설에서는 거의 현세에 도래한 악마들의 군주 정도로 묘사되곤 하지만 교황 성 레오 1세가 신의 기적과 위엄을 설파하자 알아서 자리를 피했다고도 한다.위엄쩌는 교황 성하의 업적

 


한편, 아틸라의 공포스러움이 유럽권에 널리 각인되어 아틸라를 가리키는 말인 '훈족의 아틸라(Atilla the Hun)'는 대체로 성격이 거칠고 포악한 사람을 이르는 은어나 수식어 정도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서양권에서 아틸라의 악명이 얼마나 자자했는지 짐작할만하다.

 

아틸라 사후 훈족의 갑작스런 패망 때문에 아틸라의 자질에 의구심을 품는 견해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외교관계 약화. 실제로 훈족은 약탈문화가 강하여 주변국과의 관계가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이전까지는 언제나 동맹세력을 마련해 놓는데 소흘했던 적이 없다. 아틸라 이전에도 동로마는 열심히 털어먹었지만 동시에 서로마에게는 상당한 군사적 지원을 해 주는 가까운 관계였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 그러나 아틸라는 그런것을 모두 무시하고 주변 모든 세력을 완전히 종속시키거나, 그게 아니면 적으로 간주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보여주었다. 그 결과 훈족 세력 자체는 다수의 종속세력들로 인해 커졌지만 대신 주변의 세력들은 모두 적으로 돌아섰고, 아틸라의 급작스런 사망 후 종속세력들이 들고 일어나고 모두 적으로 돌아선 주변의 세력들이 공격하면서 훈족은 급격하게 쇠락한다.

 

후대의 정복자들인 청나라의 누르하치나 티무르, 그리고 개먼치킨 칭기즈 칸과 비교해 저평가하는 견해가 많으며, 이는 이룬 업적의 단순비교가 아닌, 이러한 통치 과정을 놓고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훈족에 대한 온전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이러한 비교평가는 위험할 수 있다.

2.1 생김새와 인종 논란
로마인 역사가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아틸라는 "작은 키, 넓은 어깨와 큰 머리; 그의 눈은 작고 그의 수염은 가늘며 회색빛이 희끗희끗했다; 그리고 그는 출신을 짐작케 하는 편평한 코와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고 전한다. 이런 기록에선 소위 말하는 동양계의 몇몇 특징이 나타나는데, 아틸라의 외모에 대한 기록은 사실상 이게 전부라 할 수 있다.

 

훈족에 대한 기록을 보면 서양측은 동양인같은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나오지만 동양쪽은 서양인처럼 붉은 머리에 대한 묘사가 나오기도 한다. 사실 훈족이 게르만족이나 로마인들과 싸우던 중에 아틸라가 이끌던 훈족 기병들 중에는 훈족에 복속된 게르만족 전사들도 많았다고 한다.

 

훈족이라는 민족 집단(애초에 유목 대집단인 훈족이 한종류의 민족으로만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은 중앙 아시아를 거쳐 동유럽에 이르기까지 셀수 없는 구성원들이 거쳐갔고, 그 와중에 어마어마한 혼혈도 거쳤기 때문에 아틸라 대에 이르러서는 이미 '흉노'와는 안드로메다와 지구 사이의 거리만큼 차이가 나게 된다.

 

이것 때문에 아틸라를 중앙 아시아 + 동유럽 슬라브 계열의 혼혈로 추측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아틸라를 혼혈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한 공동체에 여러 민족이 뒤섞이는 과정에서도 지배계층 사이에서 교류가 생기는 일은 별로 없고 보통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폐쇄적인 성향을 띄는 게 보통이다. 뭣보다도 현재로서는 아틸라의 혈통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추측할 수 있는 자료가 저 문헌에 의한 묘사 뿐이기 때문에 일단은 몽골로이드 계통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다.

 

 

3 기타
아틸라가 중국과 교역을 했다는 얘기가 있으며, 그는 황금보검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보물 제635호에 해당하는 신라의 황금보검과 유사하다.

 

황금보검에 들어가는 재료 중에 석류석이 있는데 이 석류석은 아틸라가 살아있던 그 당시에는 인도, 스리랑카 등에서만 구할 수 있었으며, 황금보검은 트라키아에서 제작했는데 이를 통해서 신라가 해상을 통해서 국제 무역을 했다는 증거로 보여진다.

 

여담으로 환빠들이 광개토왕이 유럽으로 가 아틸라가 되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4 창작물에서의 모습
아틸라의 외모에 대한 기록이 부족해서인지 2차 창작물에선 그 생김새가 다양하게 묘사되는 편이다. 아틸라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인 <훈족의 아틸라>에서는 제라드 버틀러가 연기하여 아예 백인과 같은 외모로 묘사되는 반면에 코미디 영화인 박물관이 살아있다에서는 동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8] 다만 박물관이 살아있다에서 등장하는 훈족들은 사실 몽골족과 더 비슷한 면도 있다.


어떻게 보면 훈족은 유목민족이니 만큼 다른 민족이 다 섞여서 어떻게 나와도 상관없을지도(...)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된 '에다' 번역서적에서는 브린힐트의 오빠로 나온다.


또, 주세페 베르디는 아틸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오페라를 만들었다.


아틀란티카에서는 아틸라를 모델로 용병을 만들었는데, 용병 성별 균형을 맞추려는 이유 때문인지 여체화되어 등장했다.(...) 다만 용맹한 여전사의 이미지가 상당히 부각된 탓에 이건 여캐가 아니고 남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임페리얼 가드의 스페셜 캐릭터 모굴 카미르는 아틸라의 패러디다. 아예 그가 살던 행성 이름 자체가 아틸라다.

 

문명5 확장팩에서 등장하는 아틸라는 동양인 보다는 서양인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러져 있으며, 시도때도 없이 전쟁을 벌일 정도로 호전적인 성향의 지도자인 동시에 도시를 다른 지도자들 보다 빠른 속도로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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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명한 인물이 권좌에 오르기 전에도 실권을 쥐고 있었으리란 믿음은 꽤나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람세스 2세의 경우에도 파라오가 되기전 아버지와 공동통치를 했으리란 믿음이 존재했다고 한다.
[2] 블레다의 죽음에 대한 설로는 사냥중에 사고로 죽었다는 설과 이를 가장해 아틸라가 암살했다는 설로 나뉘어진다. 실제로 블레다가 죽기 전에도 아틸라와 블레다는 어느정도 대립구도가 있었다는 점에서 후자쪽에 무게가 실리는 경향이 있다.
[3] 그렇다고 동로마가 이때의 훈족보다 약하다고 보면 오산이다. 동로마는 언제나 사산 왕조를 상대하는 동부전선에 최소 절반의 군사력을 유지시켜야만 했기 때문. 한쪽 팔을 묶고 싸운 거다.
[4] 호노리아가 독신 생활에 싫증이 난다는 이유로 아틸라에게 몰래 구혼편지를 보냈다. 이때 지참금으로 서로마의 절반을 약속. 참으로 국가적 민폐가 아닐 수 없다(...).
[5] 이 사산 왕조 공격설이 어디서 나왔냐면 동로마에서 훈족에게 파견된 사절단이 아틸라를 섬기는 옛 로마인과 가진 연회에서 옛 로마인이 아틸라가 아마 이제 사산 왕조를 칠거다라는 추측성 발언을 하면서 나왔는데, 실제로 아틸라가 사산 왕조의 아르메니아 합병을 막기위해 군대를 파견한 적이 있긴 한 모양이다. 그러나 일부 군대를 나눠 파견했을뿐 자기자신은 본대를 이끌고 갈리아를 쳤기 때문에 아틸라가 정말로 페르시아를 멸망시킬 생각을 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게르만족에 대한 지배권 확대와 로마로부터의 공납에 더 관심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6] 몽골 제국도 동유럽 침공 당시 비슷한 소리를 듣게 된다.
[7] 대표적인 것이 니벨룽의 노래, 에첼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8] 여기서는 주인공이 자기 어린시절의 쓸쓸함을 이해해주자 다른 훈족들과 함께 울음을 터트린다.(...)

 

다른 자료 ---> http://www.necrosant.net/zbxe/2101